[詩가 있는 갤러리] 서홍관 '허락없이 숲에 눕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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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 위로도 솔잎 위로도 뜻도 없고
이유도 없이 아무렇게나 뿌려지는
가을 햇살을 보며 나도 가던 길을 멈추고
갈참나무인지 굴참나무인지 알 길이 없는 낙엽들이 뒤엉켜 쌓여 있는 숲그늘에 털썩 눕는다.
쉬잇! 이미 가을 벌레들이 자리잡고 쉬고 있는 중이다.
여보게 설마 날더러 나가라고는 안 하겠지.당신이나 나나 이 우주에서 허락 없이 할 수 있는 것이 몇 가지 되겠는가.
이 무진장하게 쏟아지는 가을 햇볕이나 쬐다가 가세.
노린재 한 마리
벌써 내 옷소매 위로 올라 앉는다.
-서홍관 '허락 없이 숲에 눕다'전문
노린재와 친구가 됐다.
눈부신 햇살이 대상을 가리지 않고,뜻도 이유도 없이 아무렇게나 뿌려지는데 누구와 친구가 되지 않을 수 있을까.
낙엽위에 털썩 누워 투명한 햇살 받으면 겹겹이 쌓였던 시름이 슬쩍 자리를 비킨다.
너와 나의 경계도 없어 진다.
살아있음이 다행이며,아무래도 좋다는 느낌.세상은 결국'함께 사는 곳'이어야 한다는 잠깐의 깨달음도 얼핏 머리를 스친다.
쏟아지는 가을 햇살 덕이다.
이정환 문화부장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