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불국사 석가탑이 고려 초 두 차례의 지진 피해를 입고 중수된 사실이 확인되면서 제작 시기 논란을 빚고 있는 '무구정광대다라니경(무구정경)'은 석가탑이 처음 조성된 통일신라 때 것일 가능성이 크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현존 '무구정경'이 고려 초 석가탑을 중수할 때 새로 만들어 넣었던 것일 개연성을 배제할 수는 없지만 발견 당시 위치와 서지,서체 등으로 볼 때 통일신라 유물이 가능성이 훨씬 높다는 것.이에 따라 '무구정경'은 지금까지 알려진대로 현존 세계 최고(最古) 목판인쇄물의 자리를 유지할 가능성이 커졌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지난 27일 석가탑 사리공에서 나온 종이뭉치인 묵서지편(墨書紙片) 판독 결과를 설명하는 '석가탑 발견 유물 조사 중간보고회'에서 관련 학자들은 이같이 밝혔다.

조사 결과 묵서지편은 '현종 15년(1024) 불국사무구정광탑중수기'와 '현종 15년 불국사무구정광탑중수형지기''정종 4년(1038년) 불국사서석탑중수형지기' '정종 4년 불국사서석탑중수형지기 추기' 등 4건의 문서로 구성된 것으로 확인됐다.

서울대 이승재(국어학) 노명호(국사학) 교수 등에게 판독을 의뢰한 결과 현종 15년 처음으로 석가탑을 해체하면서 '무구정경' 9편(偏)과 무구정경 1권(卷)을 사리공에서 꺼냈다가 석탑을 다시 세울 때 '보협인다라니경(보협인경)'과 함께 다시 안치한 것으로 밝혀졌다.

또 잇따른 지진으로 정종 4년 2차로 중수할 때에는 '보협인경'과 함께 '무구정경' 1권을 더 넣은 것으로 확인됐다.

이 교수는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 중인 목판본 '무구정경'이 1차 석탑 중수 때 수습한 신라시대 유물을 다시 안장한 것인지,고려 초기에 새로 만들어 넣은 것인지는 단언할 수 없으나 서지나 서체 등으로 보아 신라 작품일 가능성이 더 크다고 본다"고 밝혔다.

신라 유물일 근거로 이 교수는 정종 4년에 작성해 새로 사리공에 납입한 묵서지편은 사리함의 외부 바로 아래에서 발견된 데 비해 현존 '무구정경' 목판본만은 사리함 내부에서 발견된 점을 들었다.

발표회에 참석한 박상국 문화재위원은 "이미 일본과 중국의 최고 종이 전문가가 현존 '무구정경'의 종이 제작연대를 8세기초로 판단했다"며 "약간의 개연성을 근거로 진실을 왜곡하는일은 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천혜봉 성균관대 명예교수는 '무구정경'에서 당나라 측천무후(재위 685~704년) 때 만든 측천무후자(字)가 다수 등장하는 점을 들어 통일신라 제작설을 주장했다.

이번 묵서지편 판독으로 석가탑이 고려 초기에 대규모 지진 피해를 잇따라 입은 사실도 확실해졌다.

'정종 4년 불국사서석탑중수형지기'에 정종 2년(1036)에 일어난 지진으로 인해 석가탑이 버팀목을 사용해야 할 정도로 무너져 내렸고,2년 뒤인 정종 4년(1038)에 또 다시 지진을 만났다는 기록이 있기 때문이다.

이로써 현종 15년에 작성한 석가탑 중수기를 불과 14년 만에 다시 작성해 안치한 의문이 풀렸다고 국립중앙박물관은 설명했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