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달러 환율이 급락을 거듭하면서 달러당 800원대에 조기에 진입할 수도 있다는 경고가 나오고 있다.

심리적 지지선인 910원이 무너진 상태에서 이달 말 미국이 금리를 추가로 인하할 경우 원.달러 환율 900원 붕괴 가능성이 더욱 커질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환율이 끝모를 추락을 계속하면서 수출기업들은 채산성 악화에 비명을 지르고 있다.

환율이 910원 밑으로만 떨어져도 국내 기업의 절반 정도는 채산성을 유지하기 힘든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원.달러 환율은 지난 26일 909원90전으로 거래를 마쳐 10년 만에 처음으로 910원 아래로 떨어졌다.

같은 날 뉴욕 역외선물환(NDF) 시장에선 원.달러 1개월물 환율이 907원40원을 기록했다.

환율 하락의 가장 큰 원인은 달러 약세 현상이다.

앨런 러스킨 RBS그리니치캐피털 외환분석가는 "달러가 실물과 금융 양쪽에서 동시에 하락 압력을 받고 있다"고 밝혔다.

'미국 경기 침체'라는 실물 부문의 악재와 '금리 인하 가능성'이라는 금융 부문의 변수가 양쪽에서 달러 하락을 부추기고 있다는 설명이다.

특히 한국의 경우 수출 호조와 증시 급등에 따른 외국인 투자로 달러가 계속 유입되고 있어 800원대 진입도 시간 문제다.

오석태 한국씨티은행 이코노미스트는 "원.달러 환율이 일시적으로 반등할 수는 있겠지만 장기적으로 달러화의 추세적 상승은 기대하기 어렵다"며 "내년 말에는 원.달러 환율이 880원대까지 떨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달러화 약세는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 해소를 위해 2002년부터 시작된 추세로 올 들어 주택시장의 약세와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사태로 인한 금융시장의 불안으로 하락 속도가 빨라졌다"고 설명했다.

30~31일로 예정된 미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의 금리 인하 여부가 원.달러 환율 추가 하락의 분수령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숀 오스번 캐나다 TD증권 수석 외환전략가는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시장의 예상대로 금리를 내릴 경우 달러 약세는 더욱 가속화할 것"으로 내다봤다.

수출기업에 원.달러 환율 하락은 고스란히 채산성 악화로 이어진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지난 18~22일 매출액 상위 600개사를 상대로 설문조사(응답 기업 412개사)한 결과,'환율 하락으로 수출 채산성이 악화돼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답한 기업이 53%에 달했다.

채산성 유지를 위해 감내할 수 있는 환율 수준은 900~910원대라는 응답이 27%로 가장 많았다.

뒤를 이어 △910~920원(18%) △890~900원(17%) △920~930원(12%) 순이었다.

이는 환율 하락분을 직접 수출가격에 반영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현대경제연구원 분석에 따르면 국내 기업의 수출물가의 달러 대비 원화가치 탄력성은 0.005에 그친다.

달러와 비교해 원화 가치가 1% 오를 때 수출물가를 0.005%밖에 올리지 못하는 것이다.

특히 환율이 급락세를 지속하면서 기업들은 내년 사업계획을 세우지도 못하고 있다.

환율 800원대로는 올해보다 매출과 이익을 늘리기 어려워 사업 목표를 세우는 것 자체가 무의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수출 비중이 80%에 달하는 삼성전자는 원.달러 환율이 10원 하락하면 3000억원의 영업이익이 날아간다.

현대.기아차도 환율이 10원 떨어질 때마다 2000억원의 매출 손실을 입는다.

삼성그룹은 일단 내년도 기준환율을 925원 선으로 잡았지만 몇 차례의 수정을 거쳐 800원대로 하향 조정할 가능성이 높다.

정태환 현대차 재경사업부장(전무)은 "환율 변동에 따른 위험을 줄이기 위해 단계별로 사업계획을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김현석/이건호/안재석 기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