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중국발(發) 인플레와 국제 유가 급등,달러 약세로 인해 국내 물가에 3중(重)의 비상이 걸린 상황에서 대형 마트들이 '제조업 마진 축소'를 통한 가격혁명을 이끌어내겠다고 선언했다.

제조업체들에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으로 납품받아 판매하는 PB(private brandㆍ자체 브랜드) 상품의 가지 수를 크게 늘리면서 제조업체 브랜드 상품보다 20~40% 싸게 내놓은 신세계의 이마트가 대표적 예다.

대형마트들이 '과학적 기법'으로 PB 품목을 늘리고 가격을 낮출 경우,제조업체들도 그동안 챙겨온 마진을 대폭 줄여 가격인하에 나서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는 셈법이다.

안 그래도 치솟는 장바구니 물가로 인해 시름이 깊어지고 있는 소비자들에게 대형 마트들의 '총대'는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동안 제조업체들이 마진을 부풀려 이익을 챙겼거나,과다한 유통단계로 인해 최종 판매가격에 거품이 끼어있었다면 어떤 방식을 통해서든 적정 수준으로 가격을 낮추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제조업계의 얘기는 다르다.

막강한 유통파워를 거머쥔 대형마트들에 눌려 지내온 대부분의 제조업체들엔 '쌓인 불만'이 적지 않다.

그 중에서는 새겨들을 만한 지적도 많다.

한 번쯤은 이들의 목소리를 들어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다.

제조업체 쪽의 공통 불만은 '원가를 높이는 게 누군데…'라는 것이다.

대형마트들에 판매사원들을 '파견'형식으로 징발당해 그만큼의 인건비 요인이 발생하고 있다는 얘기다.

웬만한 중견 규모 이상 업체들은 전국 대형 마트에 수백명의 판촉 직원을 대고 있는데,이들은 해당 점포의 '재배치'에 따라 소속 회사와 무관한 매대에 근무하는 경우가 수두룩하다고 한다.

'자기 회사 상품의 판촉을 위한 자발적 인력 지원'이라는 게 대형마트들의 얘기지만,"대형마트들의 입맛대로 부려지는 사람들을 무엇 때문에 봉급 줘가며 파견시키겠느냐"고 제조업체들은 반박하고 있다.

유통기한이 지난 상품의 반품을 요구받는 경우가 많다는 것도 제조업체들의 불만이다.

유통기한이 임박하면 세일 등의 방식으로 자체 소화하는 외국 유통업체들과 달리 '반품 처리'로 부담을 제조업체들에 떠넘기는 관행이 점차 늘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른 반품비용 역시 제조업체들의 원가에 반영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걸핏하면 '하나를 사면 하나 더 드립니다'는 식의 '1+1 세일'을 연례행사처럼 진행,제조업체들을 쥐어짜기까지 하니 이런저런 비용 부담에 허리가 휜다는 얘기도 끊이지 않고 있다.

제조업체들의 이런 하소연을 전혀 엄살로만 볼 수 없다는 건 유통업체들과 비교한 영업이익률로도 어느 정도 가늠이 된다.

지난 상반기 대형마트를 거느린 유통업계의 양대 메이저,신세계와 롯데쇼핑은 각각 8.7%와 8%의 영업이익률을 기록한 데 비해 대형마트의 주요 거래처인 대부분의 식품ㆍ생활용품업체들은 이익률이 5~6%에 머물렀다.

3%에 턱걸이한 대형 식품회사도 있다.

하지만 제조업체들은 자신들의 불만을 대놓고 공론화하지 못한다.

대형마트들에 밉보였다가는 매대 배치 등에서 불이익을 받을 게 뻔한 데 누가 공정거래위원회에 제소하는 등의 '총대'를 멜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대형마트들이 이왕 '가격 혁명'의 사명을 자임했다면,제조업체들의 이런 하소연을 '또 그 소리'라는 식으로 마냥 무시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자문자답하는 시간을 가져보기를 권한다.

"우리는 과연 공정한가."

이학영 생활경제부장 ha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