鄭奎載 < 논설위원ㆍ경제교육연구소장 >

다시 소크라테스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 보자.펠로폰네소스 전쟁이 스파르타의 승리로 끝나고 아테네 국내 정치는 귀족파와 민주파가 치열한 내전적 투쟁을 벌여갈 때다.

혁명이 실패하고 민주파가 승리하면서 소크라테스의 죽음은 결정되었다.

국가는 '지성을 가진 자'에 의해 통치되어야 한다던 크리티아스는 쿠데타 현장에서 죽었다.

그는 소크라테스의 제자였고 플라톤의 백부뻘 되는 사람이었다.

시민들에게 "너의 무식을 깨달아라"고 가르치던 소크라테스는 농민과 상인을 가리지 않고 무작위로 선출된 1000명의 배심원들에 의해 분노에 찬 사형언도를 받았다.

철저한 민주 제도였지만 동시에 인민재판이기도 했다.

어처구니없는 지도자를 만들어 내는 것은 대중 민주주의가 보편화된 20세기 들어 더욱 심화되었다.

페론주의가 휩쓸었던 남미의 전례는 너무도 유명하지만 굳이 남미 현상이라고 말할 수만도 없게 되었다.

지성국가인 독일에서 히틀러같은 괴물이 탄생했던 것도 미스터리지만 지금도 각국 지도자의 면면을 보면 오십보 백보들이다.

현직 대통령이 이혼 소장을 쓰지를 않나,남편과 아내가 나란히 전임과 후임 국가 지도자로 취임하는 것을 목전에 둔 나라도 벌써 두 나라다.

할리우드와 다를 바 없어진 것이 21세기 정치풍경이다.

"사람이 그렇게도 없나"하는 비아냥을 받게 되지만 정치는 때로 국가 리더십을 충원하는 것이 아니라 차단하는 과정도 된다.

결국 스스로를 시정의 잡배처럼 만들지 않으면 대중의 열광적 지지도 없다.

그것이 '민주주의'라는 이름의 괴물이다.

거리 약장사와 다를바 없이 되어버린 것이 오늘의 선거다.

우리나라도 그 무대공연에 확실하게 이름을 올려놓고 있다.

열광의 축구장에서 응원단장 정하듯이 대통령을 뽑았고 그 결과 지성이며 품위라고는 찾을 수 없는 침튀기는 육두문자의 정치를 5년 내내 우리는 들어왔다.

국민들의 선호(選好)가 들쭉날쭉한다면 다수결이 결코 진정한 의사결정을 만들어낼 수 없다는 것을 통찰한 사람은 콩도르세였지만 그것을 수학적으로,그리고 의문의 여지 없이 증명해낸 사람은 불가능성 정리를 풀어낸 케네스 애로였다.

애로에 따르면 다수결은 그것의 전제조건인 질서정연한 선호체계와 결코 양립할 수 없다.

그는 민주주의를 아예 원천 부정했지만 사형을 면했을 뿐더러 노벨 경제학상까지 받았다.

"너의 무식을 알라"고 직설적으로 말했던 대신 오로지 고등 수식만을 통해 말했던 것이 소크라테스와 달랐다.

저주(詛呪)도 복잡하게 말하면 대중의 분노를 피해갈 수 있다 ! 왜 정치판에는 거의 언제나 쓰레기같은 인물들이 득실대는가 하는 오래된 질문에 가장 정확하게 대답한 사람은 하이예크다.

'할 수 없는 일,해서는 안 될 일'만을 골라 가장 그럴 듯하게 약속하는 사람이 국가지도자가 된다는 것이 요지다.

때문에 분배와 복지라는 아름다운 이름 아래 국가의 시장에 대한 개입이 갈수록 늘어나고 결국에는 명령경제 독재국가로 타락하게 된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멀쩡한 사람도 정치판에만 들어가면 이상하게 된다.

오늘날 중간투표자 정리(median voter theorem)라고 부르는 유명한 이론은 왜 정치인들의 공약은 시간이 갈수록 누더기가 되고 결과적으로 서로 비슷해지는가를 잘 설명해주고 있다.

30% 좌파에 30% 우파를 가진 우리나라에 너무도 잘 들어맞는 이론이 바로 이 중간투표자의 정리다.

무정견의 무식자 그룹이 선택권을 쥐게 된다는 말에 다름 아니다.

정나미가 떨어지는 이론이요,소름이 돋는 공식이다.

이런 상황이라면 품위있는 지성은 결코 정치 과정을 배겨낼 수 없게 된다.

지금도 우리는 저요! 저요! 하는 많은 대통령 후보들을 보고 있다.

더구나 5년 전 그 때처럼 공공연히 막판 단일화 마술쇼까지 기획되고 있으니 국민들의 선호체계를 아예 뒤죽박죽으로 만들어 놓겠다는 것이 선거전략이 되는 지경이다.

정치는 야바위요 정치인들의 얼굴은 두껍다.

jk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