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 正 來 < 부산교대 교수·교육학 >

이번 대선(大選)에서 한나라당이 내놓은 교육 관련 공약(公約)을 보면,다른 정당과 정강ㆍ정책 상의 뚜렷한 차별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한나라당이 적어도 정책적으로 좌파 포퓰리즘을 극복하고자 한다면,우파 정당으로서 이를 입증할 만한 정강ㆍ정책이 무엇인지를 내놓아야 한다.

지난 28일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는 비교적 구체적인 교육 공약을 제시했다.

그 주요 내용을 보면 연 1440억원의 예산을 들여 현재 6개인 자립형 사립고를 확대 강화해 100개의 자립형 사립고를 설립한다는 것이다.

또 이들 학교의 입학생 30%는 가난한 학생들로 우선 선발하고 이 중 절반의 학생에게 등록금을 포함한 일체의 장학금으로 연 1000만원,나머지 절반 학생에게는 생활비로 연 600만원을 국고에서 지급하는 것과 함께 필답 고사는 여전히 금지하겠다는 것이 골자다.

이 공약은 일견 교육 안전망의 확충이라는 점에서 환영받을 만하지만,교육의 자율성을 훼손하고 사학(私學)을 국가가 통제한다는 점에서 좌파 정당의 공약과 별반 다를 바가 없다고 본다.

한나라당이 직접 밝힌 바는 없지만,특목고나 자립형 사립고를 여전히 평준화의 보완책으로 보고 정책 입안을 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특목고와 자사고는 사실 평준화와 관계 없는,다양한 사학의 본래 모습이다.

평준화 정책을 도입할 1973년 당시 우리가 모방했던 일본은 평준화 정책을 시행하면서 그 적용 대상을 국ㆍ공립학교에 한정시키고 사립 학교를 제외했던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일본에선 평준화가 학력 저하의 주범이라며 그나마 전면 폐지한 이 제도의 연장선 상에서 사학 문제를 다뤄서는 안 된다.

모든 사학에 자율권을 주고,일체의 족쇄를 풀어 주어야 한다.

등록금을 얼마를 받건,어떻게 입학 전형을 하건,그것은 사학이 결정할 일이다.

또 사학에 대한 선택은 교육 소비자인 학생과 학부모의 몫이다.

가르치는 것에 비하여 턱없이 비싸면 그들이 외면할 것이고,가르치는 것이 매우 만족스러우면 비싼 등록금에 연연하지 않을 것이다.

기여 입학 여부나 비싼 사립학교에 가난한 학생의 입학 여부도 사학이 결정할 일이다.

2000년 삼성의 이건희 회장은 과감한 투자를 하여 중동고등학교를 '한국의 이튼 스쿨'로 만들겠다는 의지를 표명했지만,서울에 자사고 인가를 하나도 내 주지 않는 바람에 무산되었다.

입학생 전형에서부터 교육 과정,장학생 선발,교원의 급여까지 국가가 일일이 간섭하는 것은 사학의 건학 이념과 교육 의지에 대한 모독이다.

국가가 정작 나서야 할 일은 평준화로 사학에 지급하는 4조원에 달하는 재정결손 보조금과 기타 사학 통제에 투여된 재원을 국ㆍ공립학교 내실화에 투자,사립학교와 경쟁하게 하는 일이다.

한편 국가 통제 속의 각종 보조금에 기생하는 사학이 있다면,이들 사학은 경쟁에 의하여 퇴출시키면 될 일이다.

국가에 기생하는 좀비 기업이 사회에 아무런 공헌을 하지 못하듯이,이러한 좀비 사학은 우리 교육에 전혀 기여하는 바 없다.

이 기회에 평준화 대상에서 사학을 완전 제외하는 것을 공약으로 내거는 것도 한나라당의 정체성을 확보하는 길이다.

한나라당이 사립학교 자율에 더욱 신경 써야 하는 이유는 몇 해 전 사립학교법 '개악'에 전격 합의해 준 '원죄'가 있기 때문이다.

대선 공약을 내면서 너무 표를 의식하지 말아야 한다.

표만 의식하게 되면,그 정당은 포퓰리즘에 빠지고 유권자는 그 정당의 정체성을 의심하게 되어 지지도는 오히려 떨어지게 마련이다.

5년 전 한나라당이 밟은 전철을 상기하고,우리 국민의 정치 의식이 예전보다 많이 성숙했다는 사실에 주목해 대선 공약을 낼 일이다.

'교육은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란 교훈은 정치적 관점,특히 선거를 의식하고 접근해서는 결코 그 의미를 새길 수 없다.

사학의 자율성 확보는 선거 때 표를 의식한 메뉴가 아니라 사학의 제 모습 갖추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