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lobal Issue] '포드자동차 몰락'에서 배운다 : 만들면 팔린다는 아집 '104년 아성' 무너뜨려
지난 4월 포드자동차의 본거지인 미국 디트로이트 디어본에 포드(Ford) 성씨를 가진 50여명의 친족이 모여들었다.

포드차 지분 40%(의결권 있는 주식 기준)를 가진 대주주 자격으로 최악의 위기에 봉착한 포드차의 미래를 의논하기 위한 자리였다.

특히 뉴욕 월가의 인수ㆍ합병 전문회사인 퍼렐라 와인버그 파트너스의 대표가 초청돼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소식통들에 따르면 일부 포드가(家) 주주들은 값이 나갈 때 차라리 보유 지분을 다 팔아버리자는 제안을 했다.

창업자 헨리 포드의 증손이자 회장을 맡고 있는 윌리엄 클레이 포드 주니어(이하 빌 포드) 등 가문의 좌장들은 펄쩍 뛰었다.

포드 일가로선 회사 문을 닫자는 얘기나 다름없었기 때문.104년간 미국 자본주의를 상징했던 포드차가 얼마나 큰 역경에 처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31일까지 세 차례에 걸쳐 포드차의 몰락 과정과 회생 가능성을 심층 분석하는 기사를 실었다.

영국 언론의 시각을 통해 포드차의 몰락에서 어떤 교훈을 배워야 할지 짚어본다.

◆로고까지 저당잡힌 최악의 위기

포드차는 작년 126억달러의 순손실을 기록했다.

사상 최악의 실적이었다.

올 들어서도 3분기까지 포드차의 미국 내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13% 줄어들었다.

재무 상태도 악화일로를 걸어 234억달러 규모의 자산담보부 채권을 발행해야 했다.

담보 자산에는 재규어나 랜드로버 같은 비핵심 브랜드들은 물론 포드차의 상징인 블루 오벌(Blue Oval) 로고까지 포함됐다.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미국에서 판매되는 자동차의 3분의 1은 포드차였다.

하지만 포드 T모델이 나온 지 100주년을 맞은 올해 포드차의 비중은 7분의 1로 격감하고 말았다.

일본 도요타에 치여 위기를 겪었던 라이벌 제너럴모터스(GM)는 경영 상황이 조금씩 호전되고 있다.

크라이슬러도 사모펀드 서버러스에 매각돼 회생의 전기를 마련 중이다.

◆포드차 몰락의 4가지 요인

FT는 먼저 소비자의 욕구(needs)보다는 공급자 시각을 우선시한 제품 개발 정책이 화를 불렀다고 진단했다.

"우리가 미래의 시장을 내다보고 제품을 만들면 소비자는 사준다"는 공급자의 '아집'을 떨치지 못했다는 것이다.

소비자들의 요구사항이나 수요를 최우선적으로 고려하는 도요타와는 정반대였던 것.

대표적으로 1990년대 대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의 가능성을 보고는 '이거다' 싶어 SUV 생산에 사력을 집중했다.

익스커션과 익스페디션,익스플로러가 대표적인 모델이다.

1990년대 후반 이들 모델에서 돈을 쓸어담기 시작하자 승용차 부문은 안중에도 없었다.

2000년 이들 차량의 판매대수가 44만5000대를 기록할 때 포드는 소형차를 한 대도 생산하지 않았다.

그러나 유가가 치솟고 경제가 갈수록 연성화(소프트화)하면서 미국 소비자들은 서서히 대형 SUV를 외면하기 시작했다.

시장의 변화는 위기의 전주곡이었다.

포드는 예전에 하던 대로 차량 구입에 인센티브를 지급하는 정책을 꺼내들었다.

그러나 인센티브 정책은 수익 악화를 초래했고 토러스,링컨 타운카 같은 대표 브랜드들이 렌트용 차량이나 택시,공항 리무진으로 사용되는 결과를 낳았다.

FT는 다음으로 자동차 산업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빌 포드 회장을 2001년 최고경영자(CEO)에 기용한 것이 위기를 심화시켰다고 주장했다.

그는 CEO 선임 초기에 일본에서 인수한 마쓰다의 전문가들을 불러 승용차 개발을 독려하고 디어본 공장 지붕에 거대한 화초재배 시설을 갖춰 '공장의 녹색화'를 시도하면서 공장 시스템 개선에도 열정을 쏟았다.

그러나 포드차를 회생시키기엔 그의 경영능력과 전략적 사고가 모자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인력 구조조정 등 냉정한 의사 결정을 내리지도 못했고 오래 앉아 있기가 힘들다며 전략 회의를 취소하는 일도 있었다.

중요 사안에서 빌 포드의 의견에 반대하거나 직언하는 참모가 주위에 한 사람도 없었다고 FT는 전했다.

FT는 세 번째로 포드 일가의 가족 경영에서 문제를 찾았다.

록펠러나 밴더빌트,다우존스의 밴크로프트 등 미국에도 가족이 소유한 대기업 그룹들이 있지만 포드 가문만큼 경영에 지나치게 간여한 집안도 드물다는 것이다.

104년 역사에서 전문경영인이 CEO를 맡은 기간은 21년밖에 안된다. 전문경영인이 있는 경우에도 이사회에서 포드가 출신 이사들의 발언권이 막강했다.

마지막으로 사분오열된 회사 조직과 '정치'의 만연을 지적했다.

포드차에선 지역담당 대표들이 상당 수준의 의사결정 권한을 갖고 있었다.

문제는 이들 대표 간 의견이 상충되기 일쑤였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유럽에서 히트한 모델인 피에스타나 포커스 같은 패밀리카를 북미지역 대표들이 벤치마킹하려 하지 않았다.

'너'와 '나'의 구분이 있었을 뿐 최고 엔진을 만들려는 '우리'라는 팀워크 정신이 없었다.

이렇게 조직이 삐거덕대다 보니 신차 개발 프로젝트들은 예산을 항상 초과했다.

차량 품질도 오히려 뒷걸음질쳤다.

경영진은 경쟁우위 확보를 위해 노력하기보다 밥그릇 쟁탈전을 벌이는 데만 혈안이었다.


[Global Issue] '포드자동차 몰락'에서 배운다 : 만들면 팔린다는 아집 '104년 아성' 무너뜨려

◆세계 자동차 업계 재편의 '폭풍의 핵'

포드 일가의 지분 매각 논의는 빌 포드 등의 반대로 일단락됐지만 불씨는 아직 남아 있다.

현재로선 포드차의 엄청난 손실 규모와 퇴직자 의료비 부담 때문에 포드 일가의 주식을 탐내는 세력은 없다.

하지만 노조와 의료비 부담을 줄이는 협상이 타결되는 등 경영 정상화의 조짐이 보이기만 하면 사모펀드 등이 달려들 게 분명하다고 FT는 전망했다.

서버러스 캐피털 매니지먼트가 지난 8월 독일 다임러로부터 크라이슬러를 74억달러에 인수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포드가 추진 중인 재규어와 랜드로버 브랜드 매각 건에서도 서버러스,리플우드 홀딩스,TPG,원 에쿼티 파트너스&테라 퍼마,인도 타타그룹 등이 관심을 보이고 있다.

또 미국 자동차 업계에 위기가 다시 찾아오면 작년에 설로 나돌았던 포드와 GM의 제휴나 합병이 다시 거론될 여지도 있다.

르노닛산의 카를로스 곤 CEO도 북미지역 파트너를 잡는 데 관심이 있다고 말한다.

위기 탈출을 시도하는 포드의 선택에 따라 세계 자동차 업계는 대변혁을 겪을 전망이다.

장규호 기자 daniel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