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강력한 저항선으로 여겨졌던 913선이 붕괴된 후 원.달러 환율이 빠른 속도로 떨어지고 있다.

시장에서는 외환당국의 개입으로 가까스로 지켜낸 900원 선이 조만간 무너질 것이란 전망이 확산되는 모습이다. 고금리 고유가에 이어 원화 가치마저 급등(환율 하락)하면서 '3고(高)'현상이 회복 국면에 접어든 국내 경제에 타격을 줄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환율 왜 자꾸 떨어지나

31일 원.달러 환율은 장중 한때 899원60전까지 내려가 900원 선이 붕괴됐다.

2005년 4월25일 1000원 선이 무너지며 환율이 세 자릿수로 하락한 지 2년6개월여 만에 100원 더 떨어진 것이다.

최근 원.달러 환율 하락의 주요 원인으로는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의 금리 인하 기대에 따른 글로벌 달러화 약세 현상을 꼽을 수 있다.

달러는 원화뿐 아니라 세계 주요 통화에 대해 초약세를 보이고 있다.

달러화는 최근 유로당 1.44달러를 넘어서며 유로화에 대해 사상 최저치를 기록했고 캐나다달러에 대해서도 47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 중이다.

중국 정부의 추가 금리 인상 가능성과 선진국들의 통화 절상 압력 속에 위안화가 연일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는 것도 원화를 비롯한 아시아 통화들의 달러 대비 가치를 끌어올리는 요인이 되고 있다.

위안화는 이날 달러당 7.46위안대에 진입하며 또다시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웠다.


이처럼 환율 하락(달러에 대한 통화가치 상승)이 원화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외환당국 또한 적극적인 개입을 못 하고 속도 조절 정도에만 나서고 있는 형편이다.

국내적으로는 환율 하락에도 불구하고 수출이 계속 호조를 보이면서 경상수지 흑자 기조가 유지되고 있는 것이 환율 하락의 주요한 배경이 되고 있다.

◆800원대 환율 고착화되나

전문가들의 환율 전망은 다소 엇갈린다.

국내 수출 호조와 글로벌 달러 약세 기조 등 추가적인 환율 하락 요인이 크기 때문에 800원대 진입이 불가피하다는 시각과 미국 FOMC 결정을 앞두고 시장이 과도한 쏠림을 보인 데 따른 일시적 현상이란 견해가 맞서고 있다.

다만 800원대냐,900원대냐의 차이가 있을 뿐 전반적인 달러 약세.원화 강세의 기조가 쉽게 바뀌기는 힘들 것이란 점에서는 대체로 일치된 견해를 보이고 있다.

홍승모 신한은행 금융공학팀 과장은 "강력한 지지선 역할을 해온 913원 선이 붕괴되면서 손절매성 매물이 쏟아지고 있다"며 "880원 정도까지는 밀릴 것 같다"고 예상했다.

스티븐 잉글랜더 메릴린치 외환투자 전략가는 30일(현지시간) 뉴욕 맨해튼에서 미주 한국상공회의소가 개최한 세미나에서 "올 4분기 미국 경기 둔화로 달러화가 약세를 보이면서 원화가 강세를 지속해 올 연말 원.달러 환율이 달러당 890원 선까지 하락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는 다만 내년에는 다시 원·달러 환율이 900원대 초반으로 올라설 것으로 전망했다.

잉글랜더는 "한국 경제의 견조한 성장세를 감안하면 달러화에 대한 원화 가치는 장기적으로 강세를 보일 것"이라며 "메릴린치의 자체 모델을 사용해 원화의 적정 가치를 산출한 결과 달러당 841원으로 나왔다"고 소개했다.

◆내년도 5%대 성장 가능할까

고유가와 환율 하락 등 대외 변수가 급속도로 악화되면서 경기 전망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실제로 중소기업들의 11월 업황전망지수(BSI)가 전달에 비해 5포인트 하락하는 등 체감경기가 악화되고 있다.

이에 따라 내년도 경제 전망 수정이 불가피하다는 견해가 나오고 있으며 일부 민간 연구소는 전망치 수정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지훈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환율 하락으로 수출 경쟁력이 떨어지고 유가 상승에다 중국발 인플레이션 등으로 물가 상승 가능성이 커지면서 내수가 위축될 수 있다"며 "유가 상승과 물가 상승 전망치를 주시하고 있으며 11월 말쯤에 이 부분을 반영해 경제성장률 등을 수정한 보고서가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뉴욕=하영춘 특파원/박성완 기자 ha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