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가 얼마나 격동의 세월을 보내고 있는가를 절감하는 체험은,외국생활을 해본 사람은 모두 한 번씩 가졌을 것으로 생각된다.

미국 샌디에이고에 위치한 캘리포니아주립대(UCSD)에 교환교수로 나와 맞이하는 고요한 나날은 지난 서울에서의 분주했던 생활과는 너무나 달라 무엇이 서울생활을 그토록 바쁘게 했는지 되묻게 된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둘러싼 논란만 해도 그렇다.

이곳에서 새삼 한 번 더 놀란 것은,노벨경제학상을 받은 경제학자가 3명이나 있는 이곳 UCSD 경제학과 교수들 중 한·미 FTA협상이 타결돼 이제 양국 의회의 비준만 남겨두고 있다는 사실을 정확히 알고 있는 교수들이 극소수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우리가 미국과의 교역비중이 2006년 기준 12.1%인 반면 미국 입장에서 한국과의 교역비중이 2.7%에 불과하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우리나라에서의 전 국민적인 관심과 논란에 비해 미국인들의 상대적인 무관심은 놀랍게 다가온다.

이러한 양국 국민의 상반된 반응의 여러 이유 중 하나는,한·미 FTA를 추진하는 배경과 이해(利害) 당사자들과의 의견조율 등 전체적인 과정에서 한·미 양국이 보인 차이일 것이다.

즉 한·미 FTA협상을 시작하는 단계에서부터 협상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이해당사자들의 입장을 반영할 수 있는 정치적 조정과정이 의회를 통해 적절히 이뤄진 미국에서는 한국에서와 같은 사회적 갈등이 표면화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언론의 주목조차 받지 못했던 것이다.

둘째 한·미FTA에 대한 미국 국민들의 일반적인 무관심을 배경으로,미국의회의 비준과정에 상대적으로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집단은 미국 자동차노조와 육류가공협회 등 소수의 이해당사자에 국한돼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최근까지 미 의회에서의 한·미 FTA에 대한 논의는 이러한 소수 이익집단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형국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한·미 FTA를 둘러싼 미국 내 흐름은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이 크다.

FTA를 포함한 무역정책은 다른 어떤 경제정책보다 정치적 효과가 클 뿐만 아니라,정치적 영향을 가장 쉽게 받는 정책임은 교과서에서뿐만 아니라 현실에서도 쉽게 확인된다.

특히 무역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의 경우 더욱 그러하다.

따라서 FTA 이후의 산업구조조정을 위한 정밀한 후속대책과 함께 FTA 비준이 추진돼야 한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이를 간과할 경우 사회적 갈등은 물론이거니와 또 다른 정치적 포퓰리즘으로 끝나버릴 위험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일찍이 통상절차법 제정을 통해 대외무역정책과 관련된 사회적 갈등 소지를 정치적으로 해소할 수 있는 제도적 틀을 마련해,소위 '시스템'에 의해 FTA 정책들을 논의ㆍ집행하고 있다.

'깜짝쇼'와 같은 협상개시 선언과 '퍼주기식'사후대책의 악순환을 마감하기 위해서는 효율적인 FTA 추진을 위한 구조조정체계는 물론이고 사회적 갈등을 제도적으로 해소할 수 있는 '시스템'을 서둘러 갖춰야 한다.

물론 이러한 통상시스템의 구축 노력은 자칫 '안티FTA'로 이용될 소지를 막고 내부 협상과정을 실질적으로 촉진시킬 수 있도록 이뤄져야 할 것이다.

현재 미국의회에서 비준을 기다리고 있는 FTA는 한국뿐만 아니라 지난달 31일 미 하원 세입위원회를 통과한 페루와의 협정을 비롯해 콜롬비아 등 중남미국가들과도 줄을 서있다.

그러나 미국은 한국과의 비준은 미루겠다고 한국을 압박하는 형국이다.

우리나라 역시 지금 취하고 있는 '동시다발적 FTA'전략은 적절한 접근임이 분명하다.

이것이 차질없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EU 중국 등과의 대외적인 협상전략과 함께 대내적인 산업구조조정 전략 마련이 함께 병행돼야 할 것이다.

동시다발적 FTA협상이 '시스템'에 의해 이뤄짐으로써 언론이 더 이상 걱정스러운 관심 대신 무관심을 보일 수 있는,역설적인 그 날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