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星來 < 한국외대 명예교수·과학사 >

혜성(彗星)이 나타났다.

옛날 같으면 큰일 날 천변(天變)이 지금은 그저 심상하게 신문의 구석 뉴스가 됐다.

맨눈에 보이는 2등급의 홈즈 혜성은 해가 진 뒤 북동쪽 하늘에 보인다고 천문연구원이 지난달 31일 발표했다.

혜성은 540년 전 남이 장군(1441~1468)의 죽음을 생각나게 한다.

태종 이방원의 외손자인 그는 17세에 무과에 장원급제하고 세조의 총애 속에 연속 무공을 세워 27세에 병조판서가 됐다.

하지만 4촌 형인 세조가 죽고,조카인 19세의 예종이 왕위에 오르면서 이 청년 장군의 운명은 엉망이 돼버린다.

1468년(예종 1년) 9월7일 세조는 위독한 가운데 왕위를 아들에게 넘겨주고 이튿날 죽었다.

이미 닷새 전부터 혜성이 보이기 시작한 때였다.

그리고 그 혜성은 10월 초까지 하늘에 나타나 사람들을 두렵게 했다.

그런데 10월24일 병조참지 유자광이 남이의 모반을 밀고했다.

사흘 동안의 강도 높은 취조 끝에 남이를 비롯한 7명이 역모의 주모자로 판정받아 시내에서 환열(수레에 묶어 사지를 찢는 형벌)을 받았다.

후세의 야사에는 유자광이 무고(誣告)로 남이를 옭아맨 사건이라고 쓰여 있다.

특히 남이가 지은 시구 가운데 한 글자를 고쳐 고자질했다는 소리도 있다.

'白頭山石磨刀盡/ 豆滿江水飮馬無/ 男兒二十未平國/ 後世誰稱大丈夫'(백두산 돌은 칼 갈아 닳고/ 두만강 물은 말 먹여 마르도다/ 남아 20에 나라를 평안하게 하지 못한다면/ 후세에 누가 대장부라 하리)는 1467년 이시애의 반란을 토벌하고 회군(回軍)할 때 남이가 지은 것이다.

이 가운데 '남아 20에 나라를 평안하게 하지 못한다면'이란 대목에서 평(平)자를 득(得)자로 고쳐 남이를 모함했다는 것이다.

'남아 20에 나라를 얻지 못한다면'이라 했다면,쿠데타로 정권을 잡겠다는 뜻 아니고 무엇일까?

하지만 예종실록에는 그런 사실은 아예 없다.

다만 이 때 남이가 역모했다고 증언한 몇 사람의 핵심 내용은 혜성 때문에 남이가 죽게 됐음을 보여준다.

그가 '강목(綱目)'등 옛 역사책을 꺼내가면서 혜성은 제구포신(除舊布新:옛것을 제거하고 새로 벌이다)의 조짐이란 말을 했고,자신이 앞장을 서겠다고 했다는 증언이다.

이런 혜성 관련 증언이 사실이라면 남이는 죽임을 당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란 판단이다.

세상을 뒤엎고 새 판을 짜겠다고 선언한 사람을 그대로 살려줄 정권이란 있을 수 없던 시절이니 말이다.

실제로 세종 때의 대표적 천문학 책인 이순지의 '천문유초(天文類抄)'에도 똑같은 해석이 실려 있다.

혜성은 옛 것을 제거해 새 판을 짠다는 조짐이라는 것이다.

나의 연구에 의하면 우리 역사의 큰 사건 몇은 분명히 혜성의 출현과 관련돼 있다.

장보고가 지원했던 신라 말의 한 반란 사건이나,1456년 사육신의 단종 복위사건 등이 그렇다.

모두 혜성이 나타나자 용기를 내어 반란을 일으키게 됐다고 판단된다.

당연히 집권자로서는 혜성이 나타나면 특별경계를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혹시 누군가 군대를 동원해 모반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1471년(성종 2년)의 기록은 그런 경우를 보여준다.

그해 12월 혜성이 나타나자 임금은 동과 서 양방향에 특별사령관을 임명하고 특별 부대를 편성해 경계를 강화했다.

이를 성종실록에서는 '성변계엄'(星變戒嚴)이라 쓰고 있다.

이제 유난히 큰 혜성이 보여도 아무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밝은 세상이 됐다.

쿠데타도 '성변계엄'도 걱정하지 않는 과학 시대가 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선을 코앞에 둔 지금의 우리 현실은 옛날의 혜성 시대 못지않게 어지럽다.

1892년 영국의 에드윈 홈즈(1842~1919)가 처음 발견한 7.1년 주기의 혜성은 평상시 17등급 정도라고 한다.

구경 1m 이상의 대형 망원경이 아니면 관측이 불가능했다.

이 혜성이 지금 표면의 급격한 분출현상으로 맨눈에도 보이게 됐다니,이것도 우리 정치 현실을 반영하는 과학시대 제구포신의 조짐이나 아닌지 모르겠다는 엉뚱한 생각도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