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고모씨는 지난해 10월 비상장 휴면법인을 사들인 후 투자회사인 A사로 업종을 전환했다.

휴면법인 매입가는 2000만원.고씨가 적지 않은 돈을 주고 휴면법인을 매입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고씨는 A사를 통해 투자자 4500명에게서 750억원을 투자받은 뒤 코스닥 상장 법인인 B사를 매입했다.

이어 차명계좌를 통해 B사 주식을 집중 매입하는 방식으로 주가를 주당 500원에서 한때 1만4100원까지 끌어올렸다.

A사가 B사의 모회사인 것처럼 꾸민 뒤 "상장만 하면 A사의 주가도 B사처럼 뛸 것"이라고 속여 A사의 주식을 고가에 팔았다.

투자자들에게 B사에 대한 배당금도 현금 대신 A사 주식으로 나눠줘 총 960억원을 가로챘다.

#2 휴대폰 대리점 사장인 최모씨는 휴면법인을 이용,회사 직원용이라고 속이고 한 번에 100~200대씩 '대포폰'(다른 사람 명의를 도용해 개통한 휴대폰)을 만들었다.

이 같은 수법으로 2005년 5월부터 지난해 9월까지 총 1640여대의 대포폰을 시중에 판매,3억2000여만원의 부당 이득을 챙겼다.

등기부상으로는 살아 있지만 실제 영업활동이 없는 이른바 '휴면법인'이 급증하면서 이를 악용한 각종 불법 행위들이 판을 치고 있다.

4일 대법원에 따르면 2006년 한 해 동안 청산이 이뤄진 3만738개의 법인 중 휴면법인 상태로 방치되다가 법원의 직권으로 청산된 법인은 총 2만8153개에 이른다.

이렇게 버려지는 회사들은 2004년 1만9015건,2005년 2만4222건으로 계속 증가하는 추세다.

문제는 죽은 기업이나 마찬가지인 이들 휴면법인이 탈세,주가 조작,사기 등 각종 불법의 온상으로 변해 유령처럼 되살아난다는 점이다.

'론스타식 먹튀'는 휴면법인을 이용한 대표적 '탈세' 사례로 꼽힌다.

지방세법에 따르면 설립한 지 5년이 안 된 법인이 수도권지역 부동산을 취득하면 등록세를 3배 물어야 한다.

기업들이 중과세를 피하기 위해 설립 5년이 넘은 휴면법인을 사들인 뒤 이 회사 명의로 부동산을 매입하는 것.론스타가 스타타워빌딩을 매입할 때 이 방식을 사용,논란이 되고 있다.

휴면법인을 이용한 사기행각도 적지 않다.

속칭 '딱지수표 사기단' 사건도 휴면법인이 연결고리였다.

이모씨는 휴면법인 6개를 인수한 뒤 이들 법인 명의로 액면가 5000만~1억원의 당좌수표 150여장을 발행,시중에 유통시킨 후 고의로 부도를 냈다가 검찰에 적발됐다.

기업 인수.합병(M&A) 관련 인터넷 사이트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것도 휴면법인의 이런 높은 '활용가치'와 무관치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얼마 전까지만 해도 기업 M&A 시장에서 휴면법인의 몸값은 수천만~수억원에 달할 정도로 '상한가'였다.

업계 전문가들은 휴면법인이 이처럼 각종 불법 행위에 이용되고 있는데도 행정당국이 손을 놓고 있어 선의의 피해자들을 양산하고 있다며 관계기관의 적극적인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박민제/김병일 기자 pmj5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