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액권 인물초상으로 백범 김구와 신사임당이 선정됨에 따라 우리나라 화폐초상 인물은 세종대왕,퇴계 이황,율곡 이이 등 '조선시대 이(李)씨 남자' 일변도에서 벗어나 독립애국지사 여성계로 폭을 넓히게 됐다.

한은은 화폐도안의 핵심인 초상인물이 선정됨에 따라 화폐 디자인과 화폐발행 준비작업을 서둘러 2009년 상반기 중 새 화폐를 발행한다는 계획이다.

◆어떻게 선정됐나


10만원권의 경우 그동안 각종 여론조사 등에서 압도적 지지를 받아 일찌감치 백범 선생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5만원권의 후보 역시 신사임당이 처음부터 가장 유력하게 거론됐다.

막판 진보여성단체들의 반대로 논란이 빚어지긴 했지만 한은은 신사임당이 여성계뿐 아니라 문화예술인으로서의 대표적 상징성을 보유하고 있는 점을 들어 최종 낙점했다.

최종 4명의 후보에 들었던 안창호는 김구와 같은 독립운동가라는 점에서,장영실은 상대적으로 인지도가 떨어진다는 점 등에서 신사임당에게 밀린 것으로 알려졌다.

한은은 일각에서 공청회를 거치지 않아 '밀실 선정'이었다고 지적하는 것에 대해 화폐 초상인물 결정에 공청회를 여는 것은 부적합하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

이승일 한은 부총재(화폐도안 자문위원회 위원장)는 "공청회를 열 경우 객관적 사실보다는 개인과 각 사회단체의 선호도에 따라 각기 다양한 인물이 거론돼 여론분열만 증폭시킬 우려가 있다"며 "외국의 경우에도 도안인물 선정과 관련해 공청회를 개최한 사례는 없다"고 말했다.

5만원권 초상인물로 신사임당이 선정됨으로써 47년 만에 여성인물이 화폐에 다시 등장하게 됐다.

1962년 5월16일 발행된 100환권 지폐에는 한복을 입은 어머니와 아들이 저금통장을 들고 있는 모습으로 등장했었다.

저축을 장려하기 위한 취지를 담은 이 지폐는 실명의 위인이 아닌 일반인이 도안의 모델로 채택됐다.

이 '모자상(母子像)' 지폐는 그러나 발행된 지 불과 채 한 달이 안 돼 제3차 통화조치(6월10일 )로 새로운 화폐가 발행되면서 폐기됐다.

모자상 지폐의 유통기간이 한 달이 못됐고 실명의 위인이 아니었던 데다 어머니와 아들이 함께 모델로 사용됐다는 점에서 여성인물의 화폐도안 채택은 신사임당이 사실상 처음으로 봐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실물 도안은 2009년 초 공개

초상 인물이 뽑힌 만큼 한은은 앞으로 고액권 뒷면에 배치될 보조소재 등을 선정하는 작업에 들어갈 계획이다.

인물과 연관된 보조소재까지 선정되면 한은과 한국조폐공사는 조형화 자문위원회의 자문을 얻어 화폐 디자인 작업을 벌인다.

이 작업이 완료되면 정부 승인과 금융통화위원회의 의결을 거쳐 고액권 디자인(시안)이 최종 확정된다.

시안에선 화폐의 구체적인 색상,위·변조 방지 장치 등이 결정된다.

한은은 그러나 고액권의 위·변조 가능성 등을 고려해 시안은 일반에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

이에 따라 일반 국민들은 2009년 상반기 본제품 제조가 들어가는 시점에나 화폐 도안을 볼 수 있을 전망이다.

박성완 기자 ps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