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본질 왜곡하는 비정규직 용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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南 盛 日 < 서강대 경제대학원장 >
'내가 하면 로맨스요 남이 하면 불륜'이란 말은 사람의 의도나 입장에 따라 같은 사안이라도 전혀 다른 용어가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는 특히 이해관계가 걸린 사안에 대해선 더욱 그렇다.
예컨대 갈수록 세계화되는 세상에서 외국인 증권투자는 사회주의 국가에서조차 폭넓게 받아들이는 일이지만 세계화를 반대하는 일부에선 지금도 투기자본이라는 용어를 사용함으로써 부정적 이미지를 부각시키려 애쓴다.
요컨대 사실과는 다르게 의도적으로 왜곡된 용어를 사용해 자신의 입장 혹은 목표를 정당화하려 하는 것이다.
이성(理性)이 제대로 자리잡은 사회에선 이 같은 의도적 왜곡이 엄격한 지성(知性)의 칼로 잘려나가 뿌리내릴 여지가 없지만 무지와 감성이 앞서는 사회에선 세상을 현혹하고 나아가 나라를 도탄에 빠뜨릴 수도 있다.
포퓰리즘이 지배하는 사회가 바로 그런 사회다.
우리나라를 지금 멍들게 하고 있는 대표적인 용어 왜곡 사례는 이른바 '비정규직'이며 여기에 포함된다고 노동계가 주장하고 있는 이른바 '간접고용'이니 '특수고용'이니 하는 것들이다.
비정규직이란 용어는 본래 개별기업 내에서 직무형태를 구분하는 용어일 뿐 사회적으로나 법적으로 쓰일 수 있는 정리된 개념의 용어가 아니다.
국제적으로도 우리 식의 비정규직에 해당하는 개념과 용어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직 정규직 고용과 그 기득권을 보호하고자 하는 노동계의 전략적 의도에 따라 정규직이 아닌 모든 취업형태는 싸잡아 비정규직이라 칭해졌고 저임금,고용불안,차별 등 온갖 부정적 이미지가 덧칠해지고 있다.
지난 수년간 이와 같은 흑백논리의 집단 세뇌가 얼마나 집요했는지 이젠 멀쩡한 지식인들조차 비정규직이라면 뭔가 잘못된 게 많은 줄 알고 있다.
왜곡은 새로운 왜곡을 낳는다.
정규직이 고임금에다 철밥통이라는 것을 반증해주는 도급,사내하청,파견 등을 견제하기 위해 노동계는 이들을 '간접고용'이라는 희한한 용어로 왜곡하고 있다.
마치 실질적으로는 갑(甲)에게 고용됐으며 형식으로만 을(乙)에게 고용된 것처럼 보이게 하는 용어이다.
그리고 많은 언론매체에서 이런 용어를 여과없이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그러니 사회 일반은 의당 간접고용이 맞는 표현인줄로 안다.
그리하여 도급,사내하청의 근로자를 '직접고용'해야 한다는 노동계의 주장이 먹혀든다.
그러나 고용은 고용일 뿐 직접이니 간접이니 하는 구분은 없다.
회사 간에 이뤄지는 도급계약에 따라 근로자가 다른 회사에 가서 일한다 해서 그 회사에 고용돼야 한다면 도급이라는 민법상의 용어는 아예 생기지도 말았어야 한다.
외국에서는 간접고용이란 얼토당토않은 용어는 웃음거리밖에 되지 않는다.
도요타는 사내 하청 등 비정규직이 35%에 달하지만 누구도 고용하라 하지 않는다.
그런데 현대자동차는 직접 고용해야 하는가?
'특수고용'이란 용어는 왜곡의 정도를 넘어 아예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꾸민 허구다.
레미콘 기사 등이 예인데 이들은 애초에 고용관계가 없는 자영자들이다.
그런데 이들에게 굳이 특수고용이란 용어를 써서 마치 고용관계에 있는 근로자인 것처럼 보이게 하려는 것이다.
이들이 다른 자영자와 다른 점이라면 특정한 사업주에게 경제적으로 의존(economically dependent)하고 있어 교섭력의 열위로 인한 불이익을 당할 소지가 있다는 것 뿐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민법이나 상법을 통해 보정하는 것이 순리이지 있지도 않은 고용관계를 가정해 비정규직 운운하는 것은 연목구어(緣木求魚)일 뿐이다.
세상이 천연색인 것처럼 취업형태도 다양하다.
경제가 고도화됨에 따라 각국에서 취업형태는 더욱 다양해지고 있다.
그럼에도 한국에서는 오직 정규직만 강요되고 다른 모든 취업형태는 저주받고 있다.
그 이유가 정규직의 과보호 문제를 감추고 노동조합의 외연을 넓히고자 하는 전략적 의도에 있음에도 냉정하게 이를 가려내는 지성의 눈과 양심의 목소리는 약하기만 하다.
'내가 하면 로맨스요 남이 하면 불륜'이란 말은 사람의 의도나 입장에 따라 같은 사안이라도 전혀 다른 용어가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는 특히 이해관계가 걸린 사안에 대해선 더욱 그렇다.
예컨대 갈수록 세계화되는 세상에서 외국인 증권투자는 사회주의 국가에서조차 폭넓게 받아들이는 일이지만 세계화를 반대하는 일부에선 지금도 투기자본이라는 용어를 사용함으로써 부정적 이미지를 부각시키려 애쓴다.
요컨대 사실과는 다르게 의도적으로 왜곡된 용어를 사용해 자신의 입장 혹은 목표를 정당화하려 하는 것이다.
이성(理性)이 제대로 자리잡은 사회에선 이 같은 의도적 왜곡이 엄격한 지성(知性)의 칼로 잘려나가 뿌리내릴 여지가 없지만 무지와 감성이 앞서는 사회에선 세상을 현혹하고 나아가 나라를 도탄에 빠뜨릴 수도 있다.
포퓰리즘이 지배하는 사회가 바로 그런 사회다.
우리나라를 지금 멍들게 하고 있는 대표적인 용어 왜곡 사례는 이른바 '비정규직'이며 여기에 포함된다고 노동계가 주장하고 있는 이른바 '간접고용'이니 '특수고용'이니 하는 것들이다.
비정규직이란 용어는 본래 개별기업 내에서 직무형태를 구분하는 용어일 뿐 사회적으로나 법적으로 쓰일 수 있는 정리된 개념의 용어가 아니다.
국제적으로도 우리 식의 비정규직에 해당하는 개념과 용어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직 정규직 고용과 그 기득권을 보호하고자 하는 노동계의 전략적 의도에 따라 정규직이 아닌 모든 취업형태는 싸잡아 비정규직이라 칭해졌고 저임금,고용불안,차별 등 온갖 부정적 이미지가 덧칠해지고 있다.
지난 수년간 이와 같은 흑백논리의 집단 세뇌가 얼마나 집요했는지 이젠 멀쩡한 지식인들조차 비정규직이라면 뭔가 잘못된 게 많은 줄 알고 있다.
왜곡은 새로운 왜곡을 낳는다.
정규직이 고임금에다 철밥통이라는 것을 반증해주는 도급,사내하청,파견 등을 견제하기 위해 노동계는 이들을 '간접고용'이라는 희한한 용어로 왜곡하고 있다.
마치 실질적으로는 갑(甲)에게 고용됐으며 형식으로만 을(乙)에게 고용된 것처럼 보이게 하는 용어이다.
그리고 많은 언론매체에서 이런 용어를 여과없이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그러니 사회 일반은 의당 간접고용이 맞는 표현인줄로 안다.
그리하여 도급,사내하청의 근로자를 '직접고용'해야 한다는 노동계의 주장이 먹혀든다.
그러나 고용은 고용일 뿐 직접이니 간접이니 하는 구분은 없다.
회사 간에 이뤄지는 도급계약에 따라 근로자가 다른 회사에 가서 일한다 해서 그 회사에 고용돼야 한다면 도급이라는 민법상의 용어는 아예 생기지도 말았어야 한다.
외국에서는 간접고용이란 얼토당토않은 용어는 웃음거리밖에 되지 않는다.
도요타는 사내 하청 등 비정규직이 35%에 달하지만 누구도 고용하라 하지 않는다.
그런데 현대자동차는 직접 고용해야 하는가?
'특수고용'이란 용어는 왜곡의 정도를 넘어 아예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꾸민 허구다.
레미콘 기사 등이 예인데 이들은 애초에 고용관계가 없는 자영자들이다.
그런데 이들에게 굳이 특수고용이란 용어를 써서 마치 고용관계에 있는 근로자인 것처럼 보이게 하려는 것이다.
이들이 다른 자영자와 다른 점이라면 특정한 사업주에게 경제적으로 의존(economically dependent)하고 있어 교섭력의 열위로 인한 불이익을 당할 소지가 있다는 것 뿐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민법이나 상법을 통해 보정하는 것이 순리이지 있지도 않은 고용관계를 가정해 비정규직 운운하는 것은 연목구어(緣木求魚)일 뿐이다.
세상이 천연색인 것처럼 취업형태도 다양하다.
경제가 고도화됨에 따라 각국에서 취업형태는 더욱 다양해지고 있다.
그럼에도 한국에서는 오직 정규직만 강요되고 다른 모든 취업형태는 저주받고 있다.
그 이유가 정규직의 과보호 문제를 감추고 노동조합의 외연을 넓히고자 하는 전략적 의도에 있음에도 냉정하게 이를 가려내는 지성의 눈과 양심의 목소리는 약하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