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년간 200회 정도 골프 접대를 받았습니다.

처의 골프채 세트를 선물로 받기도 했습니다.

고급 한국 클럽(호스티스가 있는 술집)에서 술 접대를 받은 적도 있습니다."

지난달 29일 일본 중의원에서 열린 모리야 다케마사 전 방위성 사무차관 청문회.한 무기 중개상으로부터 골프 접대와 향응을 받은 것으로 밝혀진 그는 괴로운 표정으로 '혐의'를 대부분 시인했다.

검찰은 그가 매달 100만엔(약 800만원) 수준의 향응을 받은 단서를 잡고 사법 처리를 검토 중이다.

모리야 전 차관의 '도덕 불감증'에 일본 국민들은 경악하고 있다.

일본에서 중앙부처 사무차관은 관료의 최고봉이다.

그런 차관을 힘센 방위성에서 4년이나 지낸 그로 인해 다른 관료들도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다.

국내외에서 일본 관료들은 비교적 깨끗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부패하지 않고 유능한 관료 집단이 2차 세계대전에서 패한 일본을 다시 일으킨 핵심 요소 중 하나라는 연구 결과도 많다.

기자가 경험한 일본 관료들도 대부분 그랬다.

도쿄에 주재하는 한국 시중 은행 지점장들은 지난달 일본 금융감독청의 은행담당 과장을 초청,간담회를 가졌다.

한국 식으로 거마비 수만 엔(수십만 원)을 준비했지만 그는 받지 않았다고 한다.

일본 정부에서 파견 근무했던 한국의 한 경제 관료는 "일본 공무원들이 변호사 등 민간인들과 '벤쿄카이(勉强會ㆍ공부모임)'를 한 후 밥값은 물론 커피값까지 제각각 내는 걸 보고 놀랐다"고 말할 정도다.

관료들이 깨끗한 데는 이유가 있다.

공무원 윤리규정 등 통제 장치도 엄격하지만 부패를 억제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시스템이 있다.

치열한 승진 경쟁이 그 중 하나다.

도쿄대 법대 출신 등 엘리트들이 모인 관료 집단에선 내부 승진 경쟁이 불꽃을 튀긴다.

'누가 더 잘났나'보다는 '누가 실수하지 않느냐'가 승패를 결정 짓는다.

관료들이 자기관리에 철저할 수밖에 없는 배경이다.

'아마쿠다리(天下りㆍ낙하산 인사)'도 부정 방지 기능을 한다.

공무원 부패의 한 요인이 '박봉'이란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일본 관료도 민간 기업 친구들에 비해 봉급이 적다.

그러나 공직을 떠나 공기업이나 협회 등으로 옮기면 '그동안 밀렸던' 경제적 보상을 받을 수 있다.

그럼 모리야 전 차관은 왜 그랬을까.

그의 경우 공교롭게도 보이지 않는 부패 억제 시스템에 공백이 생겼다.

관료로서 최고까지 올라간 그는 더 이상 승진 경쟁에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낙하산 인사를 통한 경제적 보상의 희망도 많지 않았다.

일본에서도 공공 개혁으로 낙하산 인사는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국회는 '낙하산 인사 금지법'을 추진 중이다.

모리야 전 차관은 부패 억제 시스템의 공백기에 '유혹'을 이기지 못한 케이스란 분석이 가능하다.

한국도 요즘 '부패' 이슈로 시끄럽다.

부하로부터 인사청탁 뇌물을 받은 혐의로 현직 국세청장이 6일 구속됐다.

그 돈은 건설업자가 세무조사 무마 명목으로 전달한 '검은 돈'이다.

권력의 핵심인 청와대 비서관이 검은 돈 전달의 다리를 놓았다고 한다.

청와대 참모나 국세청장 등은 관료들이 부패하지 않는 시스템을 짜야 할 사람들이다.

그런 인물들이 시스템을 만들지는 못할망정 오히려 파괴했다.

혐의가 모두 사실이라면 그들은 모리야 전 차관보다 죄질이 더 나쁘다고 봐야 한다.

됴코=차병석 특파원 chab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