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치구들이 운영하는 동네 벼룩시장이 선거와 연관이 있을까.

선거관리위원회가 내린 결론은 '예스'다.

서울의 각 자치구들이 운영하던 벼룩시장이 연말 대선과 내년 총선을 앞두고 선거법 위반 소지가 있다는 이유로 일제히 폐쇄되면서 지나친 법 해석이 아니냐는 논란이 일고 있다.

7일 서울시와 각 자치구 등에 따르면 서초구는 주민들끼리 중고품 매매 등을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매주 토요일 구청 앞 광장에서 열었던 벼룩시장을 최근 폐쇄했다.

강남구도 매월 마지막 주 수요일마다 구청 별관 앞에서 개장했던 '나눔장터'를 당분간 열지 않기로 했다.

마포구 종로구 등 다른 자치구들도 비슷한 컨셉트로 운영되던 벼룩시장을 일제히 잠정 폐쇄했다.

자치구들이 이런 결정을 내린 것은 자치구의 벼룩시장 행사가 선거법에 위반된다는 선거관리위원회의 유권해석이 내려졌기 때문이다.

현행 선거법 제86조에 따르면 지방자치단체는 선거일 전 60일 이내에 선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각종 행사를 개최하거나 후원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서초구 관계자는 "서초 토요벼룩시장의 경우 원활한 행사관리를 위해 관련 공무원 60명 이상이 동원된다"며 "서초구 선관위에 질의한 결과 선거법 위반 가능성이 있다는 회신을 받아 일단 내년 4월까지 벼룩시장을 잠정 중단키로 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1997년 외환위기 직후 하나,둘 개설되기 시작해 10년이나 진행돼 온 이들 행사가 지금까지는 단 한 번도 선거를 이유로 폐쇄된 적이 없었다는 점에서 선관위의 이번 유권해석은 지나친 측면이 있다는 지적이 많다.

서초구 관계자는 "올해 선관위에 처음 질의를 했고 선거법 위반의 소지가 있다는 회신에 따라 폐쇄를 결정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주민들의 생각은 다르다.

유철수씨(48ㆍ서초구 양재동)는 "아침 7시부터 벼룩시장에서 물건을 팔려는 사람이 줄을 설 정도로 토요벼룩시장은 서초구의 대표적인 명물로 자리잡았다"면서 "영세상인들과 주민들이 모여 쓰던 물건을 사고파는 이 행사가 선거와 무슨 상관이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실제 이 벼룩시장은 하루 이용객 수만 4만명에 이르는 등 서울의 '명물'로 자리잡은 상태다.

이 문제와 관련해 선관위에 민원까지 제기한 김훈씨도 "IMF 때 국가에서 아나바다(아껴쓰고 나눠쓰고 바꿔쓰고 다시쓰자) 운동을 펼치기 위해 구청마다 벼룩시장을 만들어 놓고 이제 와서 선거법을 이유로 시장을 폐쇄한다는 게 이해가 안 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선관위 관계자는 "현재 자치구에서 실시 중인 벼룩시장 행사는 조례나 법령상의 근거가 없고 질서 유지 등을 위해 공무원들이 대거 동원되고 있어 일단 선거법 위반으로 해석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이호기 기자 h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