林成浩 < 경희대 교수·정치학 >

공직자의 부패는 권력다툼의 한 단면인 경우가 많다.

특정 공직자의 윤리불감증에 의한 개인 비리라면 큰 우려를 자아낼 '깜'도 안 될지 모르지만,권력을 둘러싼 정파 갈등 속에서 공직자의 부패가 생기고 더 커지고 결국 드러난다면 사안은 보다 근원적으로 심각하다.

'부패사슬'이란 표현에는 비리가 홀로 산발적으로 존재하지 않고 서로 얽혀 거대한 구조를 이룬다는 뜻이 담겨있다.

만약 부패사슬을 만들고 강화시키는 추동력이 권력욕으로부터 나온다면 일부 비리 공직자뿐 아니라 정치권 전체가 연관된 것으로서 문제해결이 쉽지 않다.

마음을 어둡게 하는 이런 생각은 요즘 상황을 볼 때 꼭 과장이나 기우만은 아닐지 모른다.

한편에선 기획예산처 장관을 거친 청와대 정책실장의 스캔들과 청와대 의전비서관 사건이 세상을 시끄럽게 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현직 국세청장이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 수감됐다.

동시에 다른 한편에서는 대선 후보들의 각종 비리 의혹을 둘러싸고 정파 상호간 부패 논란이 뜨겁다.

누구는 비리 폭로로 한방에 갈 수 있다느니,흘러간 부패 세력이 다시 나온들 옛 비리의 족쇄를 벗을 수 없다느니,부패한 후보가 반부패연대를 만들어봐야 힘을 얻을 수 없다느니 등 온통 비리ㆍ부패 공방(攻防)이 대선과정을 장악했다.

대통령 후보로서 한국을 어떻게 이끌겠다는 비전과 정책 대결은 어디 있는지 모르겠다.

비리를 저지른 개인들의 도덕 해이는 지탄받아 마땅하지만 그 이면에 수단방법 가리지 않는 정치권의 권력지상주의라는 보다 근원적 폐해가 자리 잡고 있음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정치 불확실성이 증가한 오늘날 정책대결은 선거승리만 중시하는 사람들에겐 별로 매력적이지 않다.

뚜렷한 정책입장은 지지세를 높이기도 하지만 표를 떨어뜨리기도 하기 때문이다.

반면에 상대방의 법적ㆍ윤리적 하자를 물고 늘어지는 네거티브 전략은 보다 안전하고 확실하다.

잘하면 상대방을 파멸시킬 수 있고 못해도 본전이다.

정치권의 이런 행태는 행정부에 큰 파급효과를 끼친다.

상대 정치인들의 개인적 비리를 저인망식으로 훑기 위해서는 들러리로서 몇몇 행정부처의 부적절한 도움이 필요할 수 있고,그러한 약점을 찾는 가운데 행정부 측의 각종 문제가 이쪽저쪽에 의해 예상치 않게 드러날 수도 있다.

행정부가 직접 연루되지 않는 경우에도,정파 간의 비리 공방은 정치권이 행정부 문제를 파헤치는 데 집중할 수 없도록 해 간접적으로 공직자 비리를 묵인하는 셈이 된다.

무엇보다 정치인들의 극한 공방은 정치와 정부 전체에 대한 국민의 불신을 심화시킴으로써 국정운영이 시스템대로 작동되기 어렵게 만드는데,이런 상황이야말로 행정부 공직자가 지켜야 할 시스템을 벗어나 비리를 저지르는 유혹에 빠지게 하는 조건이다.

물론 고질적인 공직자 부패를 정치권의 탓으로만 돌려 그 죄과를 경감시킬 수는 없다.

정치권이 어떻든 간에 공직자로서 지켜야 할 높은 수준의 윤리기준이 있다는 데 이견을 달 수 없다.

그러나 연속해서 터지는 공직자 스캔들은 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권력에 모든 것을 거는 정치권에서의 비리 공방이라는 근원적 문제로 인해 더 심화되기도 한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단편적 부패를 거대한 부패사슬로 확대하는 것은 정치인들일지 모른다.

여기서 공직사회의 도덕성 회복을 위한 시사점을 얻을 수 있다.

뇌물을 주고받는 공직자나 업자만의 일이 아니다.

정치권이 지금과 같이 변하지 않고 그대로이면 공직자들에 의한 비리는 사라지기 힘들다.

물론 이 말에 따르는 공허함을 부인하진 않는다.

권력을 위해 정책대결보다 비리공세에 몰두하는 정치인들의 동기를 바꾸기가 쉬울 리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결국 관건은 시민사회와 언론의 보다 적극적인 감시와 개입일 것이다.

그것을 통해 정치권과 행정부를 함께 변화시키는 쪽으로 고민을 기울여볼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