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오전 서울 수송동 국세청 14층 회의실.전군표 전 청장의 구속으로 국민적 불신에 직면한 국세청의 고위간부 62명이 '종합부동산세 신고대책'을 논의하기 위해 한 자리에 모였다.

모두 침통한 표정이었다.

한상률 차장은 모두 발언에서 "그동안 신뢰를 보내준 국민 여러분께 사죄드린다.

또 어려운 여건에서 열심히 일해온 직원들에게도 죄송하게 생각한다"고 머리를 숙였다.

그러면서 "흔들림 없이 업무에 최선을 다하는 게 국민의 신뢰를 되찾는 유일한 길"이라고 강조했다.

이내 억울함을 담은 변명도 내비쳤다.

한 차장은 "이런 일들이 발생하면 일반화된 관행이 아니냐는 지적도 있는데…"라며 "간부들도 느끼겠지만 우리가 국세청에 들어오기 전에나 있었을 법한 일로 납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러나 변명이 더 길어지지는 않았다.

한 차장이 "우리의 생각은 중요하지 않다.

국민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말했듯 국민들의 눈초리가 너무도 싸늘하기 때문이다.

회의 말미에 한 차장은 직접 준비해온 프레젠테이션 자료를 스크린에 띄웠다.

청나라 4대 황제인 강희제의 모습과 '국궁진력(鞠躬盡力)'이라는 사자성어였다.

원래 제갈량의 출사표에 처음 등장한 '국궁진력'은 섬기는 마음으로 몸을 낮춰 온 힘을 다한다는 의미로 강희제가 즐겨 썼다고 한다.

한 차장은 "강희제는 청렴하고 검소한 마음가짐으로 재위 61년간 국가의 기틀을 세워 지금도 중국인들에게 존경받고 있다"면서 "우리도 이런 자세로 환골탈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물론 국세청 고위간부들의 자정의지를 폄훼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한 차장이 회의에서 수차례 강조한 것처럼 국민들은 말보다는 행동으로 보여주길 기대하고 있다.

'따뜻한 세정'이라는 전군표 청장의 슬로건도 결국 불명예로 끝나지 않았던가.

국궁진력은 그 좋은 의미에도 불구하고 대만에서는 부정부패를 일삼는 국회의원들이 다시 출마해 유권자들을 현혹할 때 쓰는 말이기도 하다.

국세청이 이번에도 다시 태어나지 못한다면 국민들은 국궁진력의 의미를 다르게 해석할지도 모른다.

류시훈 경제부 기자 bad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