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국회에 계류 중인 경제 관련 법안 처리에 제동을 걸고 나선 것은 일부 국회의원들이 표심을 의식해 포퓰리즘적 법안들을 무더기로 통과시킬 수도 있다는 우려에서다.

일단 입법이 된 법들을 다시 고치려면 최소한 수년이 걸리기 때문에 처음부터 재계의 의견을 적극 반영해야 한다는 것.기업을 옥죄는 반(反)시장,반기업적 법안들의 경우 유권자에게 매력적으로 비쳐질 수 있어 의원들이 입법을 서두를 수도 있다는 점을 재계는 특히 경계하고 있다.

이에 따라 재계는 국회에 계류 중인 66개 경제 관련 법안들을 면밀히 분석해 △유보해야 할 법안(37건) △원안대로 통과돼야 할 법안(21건) △수정해 통과돼야 할 법안(8건) 등 3가지로 분류해 국회 해당 상임위원회에 의견서를 제출했다.

◆유보해야 할 법안

재계가 유보 의견을 낸 것은 대체로 소비자,근로자,여성의 권익을 보호한다는 취지의 법안들이다.

하지만 재계가 보기에는 현실성이 없거나 너무 과도해 정상적인 기업활동을 저해하는 조항들이 대부분이다.

구매한 물품에 하자가 없어도 30일 내에는 환불을 허용해야 한다는 소비자기본법 개정안이 대표적인 예.이 법이 통과되면 소비자들은 한 달간 의류 등 새 물건을 공짜로 사용하고 다시 회사에 돌려줄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일부 소비자가 상습적으로 이 법을 악용,결국 선량한 소비자에게 피해가 돌아간다는 게 재계의 주장이다.

소비자기본법 개정안 중에서는 내년부터 시행되는 소비자단체소송과 관련,소송허가요건인 공익상의 필요성을 법원 대신 소비자단체가 판단하도록 하자는 안도 있다.

이 경우 당연히 객관성을 보장할 수 없다고 재계는 주장했다.

근로자 보호와 관련해서는 △골프장 캐디,보험설계사 등 특수형태 근로종사자들에게 노동권을 부여하는 법안 △고용의 모든 과정에서 연령을 이유로 한 차별을 금지하는 법안 등이 유보해야 할 법안들로 지적됐다.

또 자산 2조원 이상 그룹에 순환출자를 금지하고 주력 계열사를 사실상 지주회사로 간주해 규제하는 내용의 공정거래법 개정안도 재계는 대기업에 대한 추가 규제라는 점에서 입법에 반대했다.

◆조속히 통과돼야 할 법안

재계는 경제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이는 법안들에 대해서는 조속한 통과를 요청했다.

대표적인 것이 지난 4월 타결된 한·미FTA(자유무역협정) 비준 동의안이다.

재계는 비준 처리가 국회 일정 등을 이유로 미뤄지고 있는 것에 대해 우려를 나타냈다.

재계는 또 △산업자본의 은행지분 소유 상한을 완화해 금산공조의 시너지효과를 도모하는 은행법 개정안 △자산 500억원 미만의 비상장 중소기업에 대해 내부회계 관리제도 적용을 면제하는 외부감사법 개정안 등도 조속한 통과를 주문했다.

아울러 △준공 1년 내 분양·소유권 이전시 소유권 보존등기의무를 면제함으로써 취득·등록세 부담을 완화해 주는 내용의 지방세법 개정안은 주택경기 냉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건설업체의 부담을 완화해줘야 한다는 점에서 △해외자원개발 투자에 세액공제를 허용하는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은 국제 원자재 확보경쟁이 날로 치열해지고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검토해 줄 것을 건의했다.

◆수정 통과돼야 할 법안

상법 개정안,상속세법 개정안 등은 일부 내용을 수정해 통과돼야 할 법안으로 재계는 지적했다.

상법 개정안의 경우 기업가 정신을 크게 위축시킬 것으로 우려되는 회사기회 유용금지 조항을 삭제해 줄 것을 요청했다.

반대로 신주예약권,차등의결권 주식 발행 등 적대적 M&A(인수합병) 방어장치는 추가해 줄 것을 주문했다.

상속세법 개정안은 비상장주식에 대한 물납 금지조항을 철회해 줄 것을 요청했다.

비상장 중소기업의 경우 주식 물납이 상속세를 납부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또 상속세 공제를 위한 최소한의 사업영위기간을 5년에서 15년으로 늘리기로 한 데 대해 이를 10년으로 줄여줘야 한다고 재계는 주장했다.

대한상의 관계자는 "중요한 선거를 앞두고 있어 국회의원들도 표심을 의식해 의정활동을 할 가능성이 크다"며 "경제활성화와 민생경제 해결을 최우선 원칙으로 법안심사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창재 기자 yoo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