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오 한나라당 최고위원이 8일 전격적으로 '백의종군'을 선언함에 따라 친이(親李ㆍ친 이명박 후보)계와 친박(親朴ㆍ친 박근혜 전 대표)계 간 갈등이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됐다.

이 최고위원 사퇴 등을 요구하며 '버티기'를 해온 박 전 대표 측이 이제는 행동 여부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 것이다.

적극적으로 이 후보 지원에 나설 것인지,아니면 이방호 사무총장 사퇴나 대권ㆍ당권 분리 등 추가적 요구를 내걸며 갈등을 유지할지 주목된다.

◆왜 사퇴했나

이 최고위원이 자진 사퇴하기 직전인 이날 오전까지만 해도 이 후보 측 내부적으론 사퇴 불가 의견이 많았다.

"이번 요구를 받아준다고 해서 '생떼'가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게 다수 의견이었다.

임태희 비서실장은 일부 언론의 '이재오-이방호 동시 퇴진' 보도에 대해 "사실무근이다.

이 후보의 생각은 그렇지 않다"고 일축했고,박형준 대변인도 "전혀 논의되지 않고 있다"고 부인했다.

분위기가 이러한데도 이 최고위원은 왜 홀로 사퇴카드를 꺼내들었을까.

이회창 전 총재가 전날 출마 선언을 강행한 것이 기폭제가 됐다는 분석이다.

박 전 대표 측과 계속 반목할 경우 정통 보수세력의 지지를 이 전 총재에게 빼앗길 수 있다는 위기감이 컸을 것이라는 얘기다.

이 최고위원도 사퇴 성명의 첫머리에서 "이 전 총재의 탈당과 출마로 국민은 큰 충격을 받았다.

이제 한나라당은 사즉생의 각오로 임해야 한다"고 말해 이를 뒷받침했다.

전략적인 고려도 읽힌다.

상대방이 다소 무리한 요구를 하더라도 이를 전격 수용해버리면 대외적 명분을 챙김과 동시에 약속을 이행하라고 강요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이 최고위원이 박 전 대표의 '행동'을 명시적으로 촉구한 것이 이를 잘 보여준다.

그는 "바라건대 박 전 대표님도 공동선대위원장을 맡아 각급 필승결의대회에 흔쾌한 마음으로 참여해주셨으면 한다"고 했다.

◆박 전 대표의 선택은


박 전 대표는 이날 국회 대정부 질문에 불참했다.

이회창 후보가 대선 출마를 선언하며 정국에 파란을 일으킨 전날에도 국회에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핵심 측근은 "박 전 대표는 당분간 아예 언론 앞에 안나타날 것 같다"면서 "이번 주는 물론이고 다음 주까지도 침묵하는 시간이 상당히 길어질 수 있다.

고민이 깊어지는 것 아니겠느냐"고 분위기를 전했다.

측근들은 일단 '대치 유지' 쪽에 무게를 두는 듯한 반응을 보였다.

측근인 유승민 의원은 보도자료를 통해 "당 화합을 위한 사퇴가 아니라 마치 권력투쟁의 희생양인 양 착각하는 본심을 드러냈다"며 "사퇴의 진정성이 없다"고 비판했다.

이어 "최고위원을 물러나는 사람이 박 전 대표에게 공동선대위원장을 맡으라고 말한 것은 과대망상의 극치"라며 "이런 식의 사퇴라면 차라리 최고위원직에 그냥 있으라"고 일갈했다.

다른 측근은 "문제는 이 후보가 진정성 있는 화합의 자세를 보여야 한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박 전 대표 측에서 이 최고위원과 함께 사퇴를 요구한 이방호 사무총장의 거취도 변수다.

박 전 대표 측은 "당 화합의 실질적 걸림돌은 이 총장이었다"며 사퇴 압박을 계속하고 있다.

김인식 기자 sskis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