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철강 중공업 등 호황 업종의 인력 스카우트전이 불을 뿜고 있는 가운데 두산중공업에서 담수 플랜트 기술을 빼낸 혐의로 STX중공업 사장과 상무 등 핵심 임원이 전격 구속돼 파문이 일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첨담범죄수사부(이제영 부장검사)는 9일 두산중공업에서 근무할 당시 갖고 있던 기술 및 영업상 비밀자료를 빼돌린 혐의(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로 STX중공업 산업플랜트부문 구모 사장(61)과 발전본부장 김모 상무(54)를 전격 구속했다.

검찰에 따르면 두산중공업 기술연구원장을 역임하고 지난 4월 퇴사한 구 사장은 담수관련 핵심 영업비밀인 다단증발법(MSF),다중효용증발법(MED) 등의 설계 프로그램 및 절차서 등 184건의 자료를 갖고 나와 STX중공업의 업무용 컴퓨터와 USB메모리 등에 저장한 혐의를 받고 있다.

김 상무는 두산중공업 재직시 갖고 있던 비밀파일 173개가 든 USB메모리를 반환하지 않은 채 STX의 업무용 컴퓨터로 옮기는가 하면,두산중공업 직원을 통해 대형 프로젝트 입찰검토서 등 262개의 핵심 영업비밀 자료가 저장된 USB메모리를 빼낸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확보한 STX중공업의 프로젝트 입찰준비 문서에서는 두산중공업의 원자료에 있었던 주요 데이터가 그대로 나오는 것은 물론 일부 잘못된 표기까지도 쓰이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검찰은 구 사장 등이 두산중공업에서 빼낸 자료를 갖고 사우디아라비아 라빅지역 담수 사업인 '라빅프로젝트',인도네시아 발전 사업인 '빈탄프로젝트' 등 대형 사업 참여를 추진해 온 것으로 보고 있다.

두산중공업은 "주요 플랜트 설계도면과 원가 정보 등 총 900건의 자료가 유출돼 피해액이 1조7000억원에 달한다"고 밝혔다.

피해액은 빼내간 기술에 대한 투자비와 수익가치 등을 추산한 액수다.

두산은 또 "담수화설비 기술은 30년간 쌓아온 노력의 결과물"이라며 "STX의 기술유출 행위는 상도의에 어긋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경험 없는 신규업체의 무모한 시장 진출은 국가경쟁력 저하에 직결된다"고 STX에 포문을 열었다.

이에 대해 STX중공업은 "퇴직임원을 영입한 것일 뿐 거액을 들여 현직에 있던 인력을 스카우트하지 않았으며 이들이 관련기술을 가져온 것도 아니다"고 맞받았다.

STX 관계자는 또 "이들이 보유한 자료는 수십년간 두산중공업 전신인 한국중공업 시절부터 근무하면서 축적한 것으로,영구적으로 보호되지 않은 영업비밀 보호기간(통상 1년)이 대부분 지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번 사건이 신사업 진출과 인수ㆍ합병(M&A) 등으로 몸집을 불려온 STX의 공격행보에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올 들어 STX는 이번 사건의 중심축에 서 있는 담수ㆍ발전 플랜트사업 분야에 진출한 데 이어 지난달 23일엔 노르웨이 아커야즈를 인수하면서 크루즈조선사업에 뛰어들었다.

특히 STX는 유럽업체 가운데 해양플랜트 기술력이 가장 뛰어난 것으로 알려진 아커야즈 인수를 통해 관련 시장 선점을 노렸는데 이번 사건의 불똥이 도덕성에 상처를 줄 가능성도 있다.

업계 관계자는 "조선 철강 중공업 등 '돈되는 3총사' 업종에서 벌어지고 있는 과열 스카우트전이 이번 사건의 빌미가 됐다"며 "지금이라도 신사협정을 맺어 인력시장 안정을 도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송대섭/문혜정 기자 dss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