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금융시장이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파문이라는 수렁에서 좀처럼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한때 잠잠해진 것 같던 서브프라임 파문은 금융회사들의 손실 확대로 이어지면서 다시 전면에 등장하고 있다.

금융회사들의 손실은 양파 껍질 벗기듯 갈수록 커져 불확실성과 신용불안을 가중시키고 있다.

고유가와 인플레이션 우려에다 기업 실적마저 주춤해진 상황에서 금융회사들의 손실 확대는 뉴욕 증시 및 글로벌 증시에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갈수록 커지는 금융회사 손실

서브프라임 파문으로 인한 금융회사들의 손실은 지난 3분기로 일단락된 것처럼 여겨졌다.

씨티그룹의 3분기 순이익이 57%나 감소하고 메릴린치가 93년 만에 최대인 22억4000만달러의 손실을 기록했음에도 미국 금융시장이 크게 놀라지 않았던 것도 바로 '길고 긴 서브프라임 질곡에서 헤어났다'는 안도감 때문이었다.

그런데 상황이 달라졌다.

파문은 3분기로 끝난 것이 아니라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씨티그룹은 4분기에도 최대 110억달러의 자산을 손실처리할 전망이라고 발표했다.

대부분이 서브프라임 모기지와 연계된 자산담보부증권(CDO) 관련 손실이다.

문제는 이런 상황이 다른 금융회사로 급격히 확산되고 있다는 점이다.

스탠 오닐 전 회장의 퇴임을 불렀던 메릴린치는 3분기에 84억달러를 상각처리한 데 이어 4분기에도 30억달러를 더 손실로 떨어내야 할 상황이다.

더욱이 상대적으로 안전한 곳으로 분류됐던 모건스탠리마저 4분기에 37억달러를 추가로 상각해야 한다고 고백하고 나섰다.

그뿐이 아니다.

뱅크오브아메리카는 지난 9일(현지시간) "서브프라임 파문에 따른 추가 손실로 4분기 실적이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 밝혔다.

JP모건도 4분기 추가 손실이 예상된다고 고백했다.

미국 4위 은행인 와코비아도 "지난 10월에만 11억달러의 추가 손실이 발생했다"며 6억달러의 대손충당금을 추가로 쌓을 예정이라고 고해성사를 했다.

그런가 하면 영국 바클레이즈은행도 100억달러의 자산을 상각할 것이라는 소문이 나도는 등 추가 손실 파장은 국경을 넘어 대부분 대형 금융회사로 확산되는 형국이다.


◆덩달아 확산되는 신용불안

사정이 이렇다 보니 또 어떤 회사가 대규모 손실을 발표할지에 대해 월가는 우려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이런 추세라면 골드만삭스와 리먼브러더스 JP모건체이스 등도 손실 고백 대열에 합류할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깜깜한 동굴에서 막 빠져 나왔는가 싶더니만 끝을 알 수 없는 동굴에 다시 들어서는 형국이다.

지난 3분기부터 반영된 금융회사들의 서브프라임 관련 손실은 총 450억달러에 달한다.

씨티그룹은 이 규모가 더욱 늘어나 총 64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앞으로도 줄잡아 200억달러가량의 손실이 더 발표될 것이란 얘기다.

이처럼 금융회사들의 손실이 커지는 이유는 두 가지다.

금융회사들이 3분기 결산 때 손실을 다 반영하지 않고 숨겨 놓은 것이 첫 번째다.

헤지펀드 등을 이용해 교묘히 손실을 감춰뒀다가 씨티그룹 등을 계기로 은근슬쩍 고백에 나서고 있어서다.

두 번째는 주택경기 침체가 심화되면서 갈수록 손실이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금융회사들은 서브프라임 관련 채권을 이미 상당수 확보하고 있다.

씨티그룹의 경우 서브프라임 관련 CDO가 550억달러에 달한다.

4분기에 최대 110억달러를 추가 상각한다고 하지만 여기에 그칠지는 미지수다.

신용불안이 확산되는 이유다.



◆불안감 고조되는 세계증시

증시가 가장 싫어하는 것은 불확실성이다.

금융회사들의 손실 확대는 불확실성을 심화시킨다.

증시가 부담을 가질 수밖에 없다.

지난주 다우지수가 4%가량 하락했고,아시아 주요 증시가 동반 하락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더욱이 배럴당 100억달러에 육박한 유가와 이에 따른 인플레이션 우려,기업 실적과 소비 둔화 조짐 등이 겹친 상황이라 불안감은 더욱 커지고 있다.

물론 금융회사들의 손실 확대는 어느 정도 예상됐다는 점에서 파괴력은 지난 8월만 못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또 그 파장도 전반적인 신용경색으로 이어지기보다는 금융회사들의 손익에 한정된다는 점에서 증시나 경제에 미칠 영향이 제한적일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그렇지만 S&P500지수에서 금융주의 비중은 20%에 달한다.

여기에 그동안 금융주의 부진을 상쇄해온 기술주마저 최근 힘에 부치는 모습이 역력해 뉴욕 증시도 한동안 침체를 면치 못할 것이란 전망이 많다.

손성원 LA한미은행장은 "금융회사의 손실 확대는 그 자체로는 파장이 작다고 하더라도 신용불안 확산과 소비 침체로 이어질 경우 상당한 불안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HSBC의 채권트레이더인 찰스 코미스키는 "서브프라임 파문의 확대 재생산과 주택경기 침체가 결국 경기 침체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어 불안감은 더욱 큰 편"이라고 진단했다.

뉴욕=하영춘 특파원 ha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