鄭奎載 <논설위원ㆍ경제교육연구소장 >

외환위기가 10년 좌파 정권을 만들어냈다는 것은 아이러니다.

신자유주의 프로그램이 그것의 반대진영과 동맹관계를 형성하면서 '위기 후 질서'를 규정했으니 일종의 구성의 오류였다.

금융자본이 모두 외국계에 장악된 것이 하나의 상징이라면 좌파 시민운동과 강경 노동투쟁이 결합한 것이 다른 하나의 축이다.

기묘한 동거 정부요 사생아적 경제질서다.

적(敵)의 적은 동지라는 식의 착종(錯綜)적 상황이지만 한마디로 투기자본이 국수주의 좌파들을 앞장세워 단물을 빼먹은 구조다.

그것은 대기업 강성노조가 비정규직의 고혈을 짜내고 내부식민지화하는 뒤집힌 상황과 비슷하다.

이들의 공동의 적은 국내 재벌체제요 한국이 이룩한 기적같은 경제성장이었지만 그 결과는 질서정연한 개혁의 실종이었다.

그래서 대통령조차 좌파 신자유주의라는 정체불명의 용어로 자기 정체성을 고백하기에 이른 것이다.

친북 노선이라는 것도 마찬가지다.

좌파 민족주의 세력들은 통일세력이라는 자칭에 어울리지 않게도 친 김정일 세력이요 결과적으로 가장 강력한 분단세력이 되어 있다.

반인류적 주체 독재를 옹호하고 그것을 합법화해주는데 지난 10년간의 운동 역량을 온통 집중해왔을 뿐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엊그제 "북한에서 김정일이 가장 유연한 사고를 가졌더라"고 말하는 것은 결코 중의적 어법이 아니다.

'오직 1인의 자유'일 뿐인 독재자에 대해 유연한 사고 운운하고 있으니 인문학적 소양의 부재를 탓할 뿐이다.

이처럼 뒤집힌 해석을 내놓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지난 10년 동안 가장 크게 성장한 세력이 시민단체라 불리는 진영이다.

대통령 후보를 낼 정도다.

그러나 그들의 대통령 후보라는 분은 재미있게도 신자유주의적인 결과물을 가장 향유했던 인물이다.

그가 경영했다는 회사는 영업이익의 가장 큰 몫을 거대 다국적 기업 주주에 배당하는 등 주주자본주의에 충실하게 봉사했다.

그 대가로 수십억원의 스톡옵션과 엄청난 퇴직금까지 받았던 사람이 후보다.

'반(反)신자유주의'를 구호로 내걸고 있는 시민단체의 기이한 결론이다.

이런 뒤죽박죽의 이념 전선이 외환위기 10년의 결과물이다.

기업 경영권을 겁박하면서 외국자본에 헌신하는 경영학 교수가 개혁가(歌)를 부르며 시민단체 일원으로 행세해온 것도 역겨운 일이다.

오로지 재벌을 욕하는 대열에만 선다면 어떤 종류의 가면이든 쉽게 뒤집어 쓸 수 있었다.

외환위기를 계기로 이런 사이비들의 시대가 활짝 열렸다.

외환위기는 한국인들에겐 원죄 비슷한 것이었고 그것을 통해 시대구분을 해왔기 때문에 그 이전 시기에 대해 돌멩이를 던지고 조롱하는데 그 누구도 주저함이 없었다.

참여 정부가 만든 과거사 위원회 같은 것은 그것의 작은 상징이다.

성공의 역사를 실패로 덧칠하고 기어이 실패로 만들고 말겠다는 식의 패배주의까지 넘쳤다.

시대착오적 해방이론과 종속이론의 틀로 문제를 해석하려는 시도는 정치적 반미주의와 맞물리면서 지금도 맹위를 떨치고 있다.

세상을 악의 무리로 가득차 있는,그래서 기어이 종말적 상황이 필요하다고 믿는 유사 종말론 혹은 도덕주의 세력들이 개혁이라는 이름을 선취하면서 10년을 지배해왔다.

외환위기 원죄론에서 이제는 벗어날 때가 되었다.

실패는 도전의 한 과정이었을 뿐이다.

큰 성공이 있었기에 실패의 파열음도 컸다.

성공이 초래한 필연적 실패였고 동시에 새로운 단계로 나아가는 과정으로서의 실패였다.

혼돈의 이념 전선에 다시 질서를 부여하는 과제가 우리에게 맡겨져 있다.

가치 질서의 가장 중요한 대목은 역시 기업가 정신을 복원하고 사이비 공동체주의를 극복하는 일이다.

개인의 가치, 경제할 자유를 다른 어떤 가치보다 전면에 두어야 하고 그것을 통해 경쟁하고 협력하는 시장의 틀을 다시 짜자.그래야 위기 이후 우리경제의 가장 큰 질병으로 등장한 과소투자를 해소하고 중산층 복원도 가능해진다.

다시 질서정연한 '가치의 깃발'을 들 때다.

jk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