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브랜드가 뉴욕 매디슨 애비뉴에 입성하기는 처음입니다.

바로 옆이 불가리 매장이에요.

'까르띠에''블랑팡''반 클리프&아펠' 등 100년 가까운 역사를 가진 글로벌 브랜드들과 어깨를 겨루게 된 겁니다.

부담이 안된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죠.하지만 편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에족(ejoque)'은 11살밖에 안됐는데 벌써 메이저 무대에 발을 디뎠잖아요."

최근 '에족'이란 브랜드로 뉴욕에 진출한 보석 디자이너 홍성민(40)ㆍ장현숙(41)씨 부부.이들의 꿈은 소박하면서도 당찼다.

"우선 살아남는 게 최대 숙제입니다.

물론 돈도 벌어야하고요.

그냥 뉴욕에 작품 전시장 하나 얻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장) "꾸준히 걷다 보면 '베라왕'이나 '겐조'처럼 한국산 글로벌 브랜드가 탄생할 날이 있지 않겠어요? 우리 부부가 '에족'의 역사에 첫 페이지를 장식한 사람으로 기억됐으면 좋겠습니다.

"(홍) '겐조'는 일본계 디자이너 패션 브랜드로 올초 '루이뷔통'을 소유한 LVMH그룹에 편입됐다.

홍ㆍ장 커플은 1996년에 서울 안국동의 7평짜리 전셋집에서 '쥬얼버튼-ejoque(愛族)'이란 이름으로 첫 사업을 시작했다.

"당시 아내는 이미 전도 유망한 보석 디자이너였어요.

같이 일하다보니 반할 수밖에 없었죠.1998년에 결혼에 골인하고 부암동에 2층짜리 건물로 매장을 옮겼습니다.

11년간 둘이서 총 2만여개의 작품을 만들었어요."

뉴욕행(行)을 준비한 것은 2004년. "그해 10월 뉴욕 피프스 애비뉴에 현지 법인을 세웠습니다.

7월에 세계 3대 보석쇼 중 하나인 'JA뉴욕'에서 '황금사과상(Golden Apple Award)'을 수상하면서 자신감이 붙었죠." '황금사과상'은 전세계에서 참가한 2000여 업체 가운데 디자인이 뛰어난 3곳에 주는 상이다.

"한국 백화점에 입점하기도 했지만 몇 달도 못 버티겠더군요.

매출 수수료가 40%에 달하는 데다 아무래도 예술보다는 상업성에 쏠릴 수밖에 없었어요.

그래서 자진 철수하고 해외로 눈을 돌린 거죠."(홍)

100년 이상 된 고풍스런 건물들이 즐비한 미국 최대의 명품 거리인 매디슨 지역(34 Esat 67 Street)에 입성하는 일은 만만치 않은 도전이었다.

"건물주가 유대계 의사였는데 재무제표는 기본이고 작품 세계,수상경력,저명 인사의 추천서 등 요구하는 게 엄청나더라고요.

"(장) 다행히 'JA뉴욕' 수상 덕에 뉴욕의 주요 인사와 연(緣)을 맺어둔 게 도움이 됐다.

'타운 앤 컨추리(Town & Country)''더블유(W)' 등 한달에 수천만부씩 발행하는 잡지사 편집장이 추천서를 써준 것.

그렇게 해서 월세 4만달러짜리 20평 매장을 얻었다.

"간판 하나를 달려고 해도 시청에 프레젠테이션을 해야하는 곳이 매디슨 애비뉴예요.

거리 청소와 보안용으로 월 5000달러를 추가로 내야하고요.

수십년 전통의 개인이 운영하는 부티크숍들이 점점 글로벌 명품 브랜드로 대체되면서 집값이 많이 올랐습니다."(장)

홍ㆍ장 디자이너는 서양 사람들이 지금껏 보지 못한 동양인의 보석 가공 기술로 승부를 걸 계획이다.

"창호지문을 모티브로 한 브로치,꽃봉오리가 피어나는 듯한 반지,하늘로 날아오르는 새 장식 목걸이 등을 전시하고 있어요.

매란국죽 시리즈도 곧 만들 생각이고요.

저는 원석을 자연스럽게 살려서 거친 느낌 그대로 전달하는 게 특기이고 아내는 여성스러운 화려함을 더 가미할 겁니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