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법무팀의 역할에 새삼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전직 삼성 법무팀장을 맡은 김용철 변호사가 검사에게 떡값을 전달했다는 등 의혹을 주장하고 현직인 이종왕 삼성 법무실장이 "거짓 폭로"라며 책임을 지고 사퇴함에 따라 기업 법무팀의 역할과 현황이 궁금증을 자아내고 있는 것.

기업 법무팀은 애초 기업 내 재산관리와 계약자문이 주된 업무였다.

기업 내 법률 관련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일이다.

법적 쟁송은 고문변호사나 외부 로펌에 용역을 맡겼다.

그러다 대기업들이 글로벌 경영에 나서고,분쟁거리가 증가하면서 직접 국내외 변호사들을 채용해 현재 법무팀의 모습을 띠게 됐다.


그럼에도 '인맥을 앞세운다'는 인식을 아직도 불식하지 못하는 형편이다.

특히 몇 년 전 대선자금 수사를 전후해 법무팀을 확장한 게 오해를 불러일으켰다.

판.검사 출신의 전관들이 대거 스카우트돼 고위직에 속속 포진한 것도 이 즈음의 일이다.

업무의 전문성보다는 막강한 '인맥'이 법무팀의 파워 아니냐는 비아냥도 나왔다.

검사 출신의 한 법무팀 간부는 "입이 있어도 말을 못한다"며 최근 사태에 곤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이번 사건으로 기업 법무팀이 위축되지 않겠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이른바 '김용철 변호사 증후군'이다.

그 중심에는 사내변호사 채용 문제가 걸려 있다.

사법연수원 관계자는 "사내변호사 장사는 망친 것 같다"고 긴 한숨을 내쉬었다.

특히 대한변호사협회가 '비밀 준수 의무'를 위반했다며 김 변호사에게 징계를 내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어 파장이 커지고 있다.

대형 로펌 소속의 한 변호사는 "기업 법무팀이 특성상 기업 내 기밀사항에 접근하기 쉬운데 이번 사태로 기업들이 사내변호사 영입을 꺼릴 것으로 우려된다"고 말했다.

한 대기업 관계자도 "사내변호사들이 나이에 비해 직급이 높은 데다 조직에 대한 충성심도 약해 조직과 잘 융합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번 사태로 내부의 불신이 심화될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대부분 기업 법무팀은 소송 등 법적 리스크 관리자로서의 역할을 다하고 있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이번 사태는 삼성의 특수성에서 비롯한 것일 뿐이며 기업 법무팀의 존재 의미를 새롭게 다지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대형 금융회사 법무팀 소속의 한 변호사는 "거액의 소송에 걸리지 않도록 법률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게 법무팀의 역할이라면 기업 내부에서도 위법한 행위를 하는지 감시하는 것도 사내변호사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사내변호사들이 환경이나 각종 규제에 걸리지 않도록 내부적으로 '스크린'하는 것처럼 분식회계나 세금 포탈 등 범죄 행위가 빚어지지 않도록 '휘슬 블로어(whistle blower.조직의 불법이나 부정거래에 관한 정보를 신고하는 내부 고발자)'로서 역할을 해오고 있다는 설명이다.

대부분 기업 관계자 역시 법무팀이 법률적 지식을 바탕으로 위험관리 등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또 다른 대기업 관계자는 "법무팀은 M&A나 특허 관련 분쟁,해외 계약 등과 관련한 법률적 검토 작업을 실무적으로 하기에도 벅차다"며 "일각에서 제기하고 있는 '방패막이' 우려는 기우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번 일로 사내변호사 채용이 위축될 것이라고 예상한다면 기존에 뽑아 놓은 법무팀 소속 변호사들도 내보낸다는 의미 아니겠느냐"며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정태웅 기자 redae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