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산업자원부의 '민군 겸용 기술개발' 사업은 지난해 8월 국가과학기술 분야의 최고 의사결정 기구인 국가과학기술위원회에서 '성과 미흡'을 의미하는 D등급 판정을 받았다.

2007년 관련예산을 전년 대비 10.7% 줄이자는 의견도 제시됐다.

하지만 작년 말 과학기술혁신본부와 기획예산처 간 협의를 거치면서 사업예산이 되레 14% 늘어난 120억원이 배정됐다.

수요가 적어 사업 성과는 부진하지만 사업의 중요성을 감안해 예산을 늘리기로 했다는 게 정부 설명.

#2.'과학기술 영재인력 양성' 사업은 정반대였다.

당시 국가과학기술위는 25개 대학 부설 과학영재교육원을 지원하는 이 사업이 2006년도에 적은 예산으로 목표 대비 우수한 성과를 냈다고 평가했다.

또 더 많은 과학 영재를 육성하는 데 필요한 새로운 프로그램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예산 규모가 현재보다 증액돼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과학기술부도 이에 따라 내년에 이 사업에 대해 363억원의 예산을 배정해달라고 기획예산처에 요구했다.

하지만 정작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내년 예산안에는 302억원이 책정됐을 뿐이다.

당초 과기부 요구액보다는 61억원,올해 예산액보다는 16억원이 줄어든 규모다.

정부의 R&D 예산 배분은 철저히 성과평가에 따라 이뤄지는 것이 원칙이다.

정부도 이 점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 예산 배정과 집행은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기 일쑤다.

평가 점수는 엉망인데 오히려 예산이 증액되는가 하면 평가 점수가 좋은데도 예산이 줄어드는 등 '평가 따로,예산 따로식' 예산 배분이 적지 않은 것.

이종걸 의원(대통합민주신당)은 "R&D 평가 결과가 예산 편성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 사례가 적지 않다"며 "이래서는 좋은 평가가 더 많은 지원을 이끌어낸다는 믿음이 자리잡기 어렵고 결과적으로 R&D 생산성 제고도 요원해진다"고 비판했다.

전문가들은 참여정부 들어 과학기술부 장관이 부총리로 격상되고 국가 R&D 사업의 원활한 조정을 위해 국가과학기술위 산하의 실무 총괄기구인 과학기술혁신본부가 과기부에 신설됐지만 아직까지 제 역할을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예산 배분이 기획예산처나 다른 '힘 있는' 부처의 입김에서 벗어나지 못할 때가 많다는 것이다.

실제 과기부가 지난 6월 말 산ㆍ학ㆍ연 전문가와 공무원 3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과기부총리의 예산 조정ㆍ배분 결과가 실제 예산에 적절하게 반영되는지에 대해 22%만이 공감한다고 밝혔다.

국책연구소의 한 관계자는 "과기부총리와 과학기술혁신본부의 예산 조정권이 부처 이기주의 때문에 사실상 예산 심의권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일각에선 차제에 과학기술혁신본부를 과기부에서 떼어내 부처 간 R&D사업 조정과 예산배정 등의 업무를 실질적으로 주도할 수 있도록 힘을 실어줘야 한다는 의견을 제기하는 실정이다.

정부가 성과평가를 대대적으로 강화하고 있지만 연구 부실을 걸러내는 데는 곳곳에서 허점을 보이고 있다는 비판도 높다.

바이오 업계에서는 정부 돈을 받아 R&D 과제를 수행한 바이오벤처기업 중 연구 실패를 감추기 위해 코스닥시장에 '우회상장'하는 편법 사례도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코스닥에 상장하면 기술개발에 성공한 것으로 간주하는 현행 평가기준을 악용하는 곳이 있다는 것이다.

또 대학이나 국책연구소 할 것 없이 조금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기존 연구를 조금 변형하거나 복잡한 수식으로 도배해 알아보기 힘들게 만든 엉터리 보고서도 흔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R&D 특성상 연구과제가 끝났다고 당장 성과(논문이나 특허)가 나오는 것이 아닌데도 정부가 해마다 성과평가를 재촉하는 것도 문제로 꼽힌다.

연구과제에 참여한 경험이 있는 KAIST의 한 교수는 "당장의 성과평가에서 좋은 점수를 받기 위해 아직 나오지도 않은 특허나 논문을 나왔다고 허위보고하는 연구원들도 적지 않다"며 "'황우석 사태'도 따지고보면 이 같은 한국적 연구 풍토가 만든 산물"이라고 지적했다.

정부가 성과평가 과정에서 객관성과 투명성을 확보하는 데 치중한 나머지 정작 평가의 전문성은 크게 떨어지고 있다는 우려도 많다.

류재천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박사는 "평가위원을 선정할 때 일반적으로 직전연도 평가위원이나 평가대상 연구자와 소속기관 또는 출신대학이 같은 전문가를 배제한 뒤 남은 사람들 중에서 무작위로 추첨을 한다"며 "이 때문에 해당 분야를 가장 잘 아는 전문가가 평가위원에서 빠질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과기부는 이 같은 지적에 대해 평가의 전문성과 공정성 제고를 위해 조만간 평가위원 공모제 등을 도입하고 양적 성과 평가보다 질적 평가를 중시하는 방안을 마련해 시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평가와 예산배분의 연계를 한층 더 강화하고 평가와 관련한 연구원들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통합온라인평가시스템 도입도 추진하겠다고 설명했다.

기획취재부=김수언/주용석 기자 indept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