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부부뿐만 아니라 같은 길을 가는 미술가족이 많아요.

감성적인 가족 분위기가 시너지 효과를 내기 때문이지요.

끝이 보이지 않는 길에서 서로에게 위안이 되기도 하구요."

그림으로 인연을 맺은 재미 화가 최동열씨(56)와 미국인 부인 엘디 로렌스씨(56)가 최근 화업 30년을 재미있게 풀어 쓴 책 '돌아온 회전목마'를 출판하고,서울 신사동 필립강갤러리와 청담동 샘터화랑에서 각각 개인전을 열고 있어 화제다.

이들은 구상과 추상이라는 서로 다른 장르에서 일하지만 "곁에서 함께 작업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큰 위안이 된다"면서 "행여 서로의 틀에 갇힐까봐 충고와 위로 또한 잊지 않는다"고 말했다.

최씨는 유복한 환경을 마다하고 1970년대 중반 22세에 미국으로 무작정 떠났다.

경기중학교 졸업 후 검정고시 합격으로 15세에 한국외국어대 베트남어과에 입학하고,이듬해 해병대에 자원해 베트남 참전 등 청춘기의 치열한 삶을 '글'로 녹여내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글쟁이'의 꿈을 키워온 최씨는 1977년 아내 로렌스를 만나면서 미술 쪽으로 방향을 튼다.

"영화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의 배경이 됐던 미국 남부의 뉴올리언스에서 로렌스와의 만남은 내 인생을 확 바꿔놨어요.

그곳 풍광에 매료된 우리는 시내 카페에서 그림 이야기를 나누며 자연스럽게 가까워졌죠.멕시코 등지로 스케치 여행도 함께 했구요.

그때 그림이 글보다 자유스럽다는 것을 알고는 독학으로 그림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텍사스 주립대에서 미술을 전공한 아내,그녀의 동료들과 교류한 것이 큰 자양분이 됐지요."

이들은 이번 개인전에서 10여년 전부터 독자적으로 시도한 밀랍기법의 작품을 각각 30여점 내놨다.

워싱턴의 작업실에서 함께 작업한 이들의 작품에는 아기자기한 동양적 미감과 철학적인 정감이 함게 묻어있다.

최씨의 '풍경'은 창 안쪽(인간내면)과 창 밖(세상)을 조화롭게 병치시켜 도시의 이중성을 표현한 작품이고,로렌스의 추상 '퍼즐'시리즈는 다양한 곡선과 색면으로 '인연의 고리'를 묘사한 작품이다.

자연의 섭리와 은유적인 맛이 한꺼번에 느껴진다.

로렌스는 "남편의 작업이 문명과 동떨어진 인간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표현한 것이라면 내 작품은 문명이 인간에게 '거짓말'을 자극하는 현상에 빗대어 자연을 형이상학적인 미감으로 풀어낸 것"이라고 설명했다.

27일까지.(02)517-9014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