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에서는 수요와 공급이 균형(equilibrium)을 맞추는 곳에서 가격과 물량이 결정된다고 가르친다.

미시경제학에서도,거시경제학에서도 이 균형개념은 논리 전개의 기본이다.

그런데 경제가 균형에 도달하려면 과연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리는 것일까.

1970년대 예일대 경제학자 허버트 스카프는 경제가 균형에 이르는 시간은 제품과 서비스 수의 4제곱에 따라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의 말대로면 현대 경제의 엄청난 상품 수를 생각할 때 경제가 한번 외부적 충격을 받은 후 균형에 도달하기까지는,모든 의사결정이 세계에서 가장 빠른 슈퍼컴퓨터의 속도로 이뤄진다고 가정하더라도 우주의 나이보다 더 걸린다는 계산이 나온다.

기술,정치적 불확실성,기후,소비자 취향 등과 같은 변화 요인들이 거의 매초마다 발생하는 상황이고 보면 우리는 균형이 아니라 언제나 불균형의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다.

이론 혹은 이상과 현실의 차이가 이렇다.

'부의 기원(에릭 바인하커)'에서 나오는 얘기다.

또 다른 균형개념이 있다.

국가균형발전,지역균형발전에 나오는 균형(balance)이다.

이런 균형논리는 선거철만 다가오면 어김없이 기승을 부린다.

대통령 후보들의 공약을 보면 확연하게 드러난다.

하지만 변수가 너무도 많은 이런 균형이 과연 달성가능하기나 한 것일까.

균형발전의 원조라고 하면 결코 빼놓을 수 없는 나라가 핀란드다.

그 핀란드가 균형을 깨뜨릴 게 자명한 발전의 역동성을 들고 나오는가 하면 헬싱키를 유럽에서 제일가는 경쟁력 있는 도시로 만들겠다고 나섰다.

균형에 도달해 보기도 전에 방향을 틀고 있는 셈이다.

일본의 경우도 주목해볼 만하다.

최근 일본경제신문은 '균형환상을 넘어'란 제목의 시리즈를 연재했다.

금년 3월에 인구조사를 해보니 도쿄 등 3대 도시권의 인구집중이 더욱 높아졌고,이런 집중도는 과거 고도성장기,버블기에 이어 세 번째로 일본의 성장 사이클과 정확히 일치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균형발전'신화는 붕괴됐다고 단언한다.

일본 정부가 균형발전을 주장한 전국종합개발계획이 처음 결정된 1962년 이후 약 반세기가 흐른 시점이다.

얘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지방으로의 무조건적 투자는 빚만 잔뜩 늘린 꼴이 되었고,공공사업에 의존한 지역은 자립할 수 없었다고 지적한다.

지방에서 활력을 회복한 지역이 있다면 글로벌화에 대응하는 등 자조(自助)적 노력으로 창의성을 발휘한 곳이다.

이제는 국가,지방 모두 발상의 전환이 요구된다면서 국가에 더 이상 의존해서는 안되며,개성을 살린 지역전략이 중요하다는게 결론이다.

남의 일같지가 않다.

미래 예측가들이 인구구조 변화,온난화 등과 함께 들고 있는 트렌드 중 하나는 도시화다.

아시아 지역을 보면 이른바 메가시티 경쟁이 치열하다.

이동을 금지하고 폐쇄된 국가라면 또 모를까 균형을 기대하기는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리처드 도킨스가 쓴 '만들어진 신'이라는 책의 첫 페이지에는 이런 문구가 나온다.

"누군가 망상에 시달리면 정신이상이라고 한다.

하지만 다수가 망상에 시달리면 종교라고 한다."

언제부터인가 균형론이 우리 사회에서 마치 종교가 되다시피한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안현실 논설위원ㆍ경영과학博 a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