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가진 것만 줄 수 있는 법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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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효종(朴孝鍾) < 서울대 교수·정치학 >
다른 모든 것들도 그렇지만,특히 한국의 권력정치에는 시작과 마침이 뚜렷한 것 같다.
천하를 호령하던 참여정부도 어느덧 황혼녘을 맞아 바통터치를 준비하고 있는 대선 주자들 앞으로 바싹 다가서고 있다.
소회가 어떨까.
처음에는 "국민이 대통령"이고 자신은 '반(半)통령'에 불과하다고 겸손해 했지만,노무현 대통령은 절반의 국민과 너무 쉽게 헤어졌다.
그 후 모든 쟁점사안에서 검투사처럼 싸움에 뛰어든 결과,사회는 '만인투쟁의 장'으로 변모했고 "투쟁이 모든 것의 아버지"가 되는 상황이 됐다.
'한데 아우르기'보다 '편 가르기'의 길을 택한 노 대통령은 '외로운 대통령'이 됐고 또 그의 슬픔과 외로움은 끊임없이 공동체의 분열과 갈등으로 이어졌다.
그는 최근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대통령에 맞는 말씨가 준비되지 않았다"고 고백했다.
어려운 시절을 살았던 사람들에겐 나름대로 애달픈 추억들이 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천신만고끝에 새 옷을 샀는데 옷장에 고이 넣어둔 나머지 막상 그 옷을 꺼내 입으려고 했더니 몸이 훌쩍 커버려 결국 그 옷을 입지 못하게 된 기억이 아닐까.
그 기억이 한(恨)으로 남아있는 것은 때를 놓쳤기 때문이다.
지금 노정부엔 무능과 분열이라는 낙인이 찍혀 있다.
노 대통령 본인으로서는 자신의 진심을 알아주지 못한 국민들이 야속하겠지만,민심이 그러니 어쩌겠는가.
이름조차 변변치 못했던 열린우리당이 총선에서 과반수 의석을 차지하는 등,그 잘나갔던 시절,노 대통령이 "건강한 긴장관계"를 외치기보다 온 국민의 대통령,즉 '온통령'이 되려는 노력을 했더라면,우리사회는 지금보다는 덜 소란스럽고 덜 갈등적인 공동체가 됐을 것이다.
이명박 후보도 그런 점에서 후회할 일이 있을는지 모른다.
경선승리 후 욱일승천하는 기분을 만끽하기보다 패자들을 껴안고 그들의 아픔을 어루만지는 태도를 보였더라면 이회창 후보가 어떻게 그 숱한 비판을 딛고 출마할 마음을 먹을 수 있었을까.
인생에는 여러 번 할 수 있는 것도 있지만,한 번밖에 못하는 것도 있다.
요즘 하도 이혼이 잦으니 결혼은 한 번이 아니라 두세 번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청춘은 한번 가면 그만이다.
대통령 노릇도 한 번뿐인데,그 임기 동안 한번 멋진 일을 할 수는 없는 것일까.
위대한 업적을 이루려고 해도 기억해야 할 게 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만 남에게 줄 수 있다는 점이다.
남에게 간과 쓸개를 내주려고 해도 자신에게 건강한 간과 쓸개가 있어야 한다.
헌혈을 하려고 해도 자신의 피가 건강해야한다.
건강하지 못한 간과 쓸개,피를 주면 멀쩡한 사람을 파멸시킬 뿐이다.
앞으로의 대통령은 우주라면 몰라도 바다 정도면 품을 수 있을 만큼의 푸근한 사람이면 좋겠다.
평소에 관용의 마음이 없고 속이 좁기만 하다면,대통령이 돼서 아무리 국민들에게 무엇인가 값진 것을 주려고 해도 줄 수 있는 건 오만과 오기뿐이다.
또 평소에 인색하게만 살아왔다면,남에게 줄 것은 인색밖에 없다.
한을 가진 사람도 줄 것은 한뿐이다.
지금 대통령 후보들의 공약을 보면 별별 것을 다 주겠다고 한다.
표만 된다면 하늘에 올라가 별이라도 따올 기세다.
하지만 요술방망이도 없는 주제에 자신 안에 없는 것을 어떻게 국민들에게 줄 수 있을 것인가.
가난한 사람에게 연대감을 표시하는 것을 넘어서서 부자에게 증오감을 드러내는 사람이 어떻게 대통령이 돼서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 수 있을 것인가.
'가난의 철학'만 갖고 '부의 철학'은 갖지 못한 사람이 어떻게 부국(富國)을 만들 수 있겠는가.
부자들이 비싼 차를 몰고 비싼 옷을 사며 고급 레스토랑을 이용하는 것을 꼴불견이라고 증오하는 사람이 어떻게 차를 팔고 옷과 음식을 팔며 서비스하는 사람들의 삶에 귀중한 도움을 준다는 사실을 알 수 있겠는가.
"배부른 돼지보다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낫다"는 말만 되뇌는 사람이 무슨 수로 "배고픈 소크라테스보다는 배부른 소크라테스가 낫다"는 말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인가.
다른 모든 것들도 그렇지만,특히 한국의 권력정치에는 시작과 마침이 뚜렷한 것 같다.
천하를 호령하던 참여정부도 어느덧 황혼녘을 맞아 바통터치를 준비하고 있는 대선 주자들 앞으로 바싹 다가서고 있다.
소회가 어떨까.
처음에는 "국민이 대통령"이고 자신은 '반(半)통령'에 불과하다고 겸손해 했지만,노무현 대통령은 절반의 국민과 너무 쉽게 헤어졌다.
그 후 모든 쟁점사안에서 검투사처럼 싸움에 뛰어든 결과,사회는 '만인투쟁의 장'으로 변모했고 "투쟁이 모든 것의 아버지"가 되는 상황이 됐다.
'한데 아우르기'보다 '편 가르기'의 길을 택한 노 대통령은 '외로운 대통령'이 됐고 또 그의 슬픔과 외로움은 끊임없이 공동체의 분열과 갈등으로 이어졌다.
그는 최근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대통령에 맞는 말씨가 준비되지 않았다"고 고백했다.
어려운 시절을 살았던 사람들에겐 나름대로 애달픈 추억들이 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천신만고끝에 새 옷을 샀는데 옷장에 고이 넣어둔 나머지 막상 그 옷을 꺼내 입으려고 했더니 몸이 훌쩍 커버려 결국 그 옷을 입지 못하게 된 기억이 아닐까.
그 기억이 한(恨)으로 남아있는 것은 때를 놓쳤기 때문이다.
지금 노정부엔 무능과 분열이라는 낙인이 찍혀 있다.
노 대통령 본인으로서는 자신의 진심을 알아주지 못한 국민들이 야속하겠지만,민심이 그러니 어쩌겠는가.
이름조차 변변치 못했던 열린우리당이 총선에서 과반수 의석을 차지하는 등,그 잘나갔던 시절,노 대통령이 "건강한 긴장관계"를 외치기보다 온 국민의 대통령,즉 '온통령'이 되려는 노력을 했더라면,우리사회는 지금보다는 덜 소란스럽고 덜 갈등적인 공동체가 됐을 것이다.
이명박 후보도 그런 점에서 후회할 일이 있을는지 모른다.
경선승리 후 욱일승천하는 기분을 만끽하기보다 패자들을 껴안고 그들의 아픔을 어루만지는 태도를 보였더라면 이회창 후보가 어떻게 그 숱한 비판을 딛고 출마할 마음을 먹을 수 있었을까.
인생에는 여러 번 할 수 있는 것도 있지만,한 번밖에 못하는 것도 있다.
요즘 하도 이혼이 잦으니 결혼은 한 번이 아니라 두세 번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청춘은 한번 가면 그만이다.
대통령 노릇도 한 번뿐인데,그 임기 동안 한번 멋진 일을 할 수는 없는 것일까.
위대한 업적을 이루려고 해도 기억해야 할 게 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만 남에게 줄 수 있다는 점이다.
남에게 간과 쓸개를 내주려고 해도 자신에게 건강한 간과 쓸개가 있어야 한다.
헌혈을 하려고 해도 자신의 피가 건강해야한다.
건강하지 못한 간과 쓸개,피를 주면 멀쩡한 사람을 파멸시킬 뿐이다.
앞으로의 대통령은 우주라면 몰라도 바다 정도면 품을 수 있을 만큼의 푸근한 사람이면 좋겠다.
평소에 관용의 마음이 없고 속이 좁기만 하다면,대통령이 돼서 아무리 국민들에게 무엇인가 값진 것을 주려고 해도 줄 수 있는 건 오만과 오기뿐이다.
또 평소에 인색하게만 살아왔다면,남에게 줄 것은 인색밖에 없다.
한을 가진 사람도 줄 것은 한뿐이다.
지금 대통령 후보들의 공약을 보면 별별 것을 다 주겠다고 한다.
표만 된다면 하늘에 올라가 별이라도 따올 기세다.
하지만 요술방망이도 없는 주제에 자신 안에 없는 것을 어떻게 국민들에게 줄 수 있을 것인가.
가난한 사람에게 연대감을 표시하는 것을 넘어서서 부자에게 증오감을 드러내는 사람이 어떻게 대통령이 돼서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 수 있을 것인가.
'가난의 철학'만 갖고 '부의 철학'은 갖지 못한 사람이 어떻게 부국(富國)을 만들 수 있겠는가.
부자들이 비싼 차를 몰고 비싼 옷을 사며 고급 레스토랑을 이용하는 것을 꼴불견이라고 증오하는 사람이 어떻게 차를 팔고 옷과 음식을 팔며 서비스하는 사람들의 삶에 귀중한 도움을 준다는 사실을 알 수 있겠는가.
"배부른 돼지보다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낫다"는 말만 되뇌는 사람이 무슨 수로 "배고픈 소크라테스보다는 배부른 소크라테스가 낫다"는 말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