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스펀 저격수'라는 명성을 확인하고 싶어서였을까.

앨런 그린스펀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전 의장의 경제 정책에 대해 비판적 견해를 꾸준히 피력해 온 조지프 스티글리츠 컬럼비아대 교수(경제학과)가 "최근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의 근본적 원인은 그린스펀 전 의장의 잘못된 금리정책 때문"이라며 다시 한번 '직격탄'을 날렸다.

스티글리츠 교수는 14일 서울 남산 하얏트호텔에서 열린 '2007 서울 국제금융컨퍼런스'에서 최근 벌어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이같이 밝혔다.

그는 "과거에는 미국 은행들이 부실 자산을 잘 관리했지만 약 5년 전부터는 이에 대한 통제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며 "지난 5년 동안의 미국 경제 성장은 바로 은행들이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부실 부동산 담보를 바탕으로 이뤄진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스티글리츠 교수는 "그린스펀이 금리 정책을 잘못 펴는 바람에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일어났다"며 "결과적으로 이번 위기의 원인은 사람들이 변동금리 대출을 계속 받을 수 있도록 그린스펀이 저금리 기조를 유지한 데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어 "서브프라임 모기지 문제는 1980년대 미국의 저축대부조합 사태(S&L 위기)와 1990년대 후반 엔론 등 기업들의 회계부정 사태에 이어 미국이 당면한 세 번째 경제 위기"라고 진단하면서 "문제 해결을 위해 누구도 정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심각한' 상황"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기조 연설 직후 열린 기자회견에서도 그린스펀 전 의장의 정책 방향에 대한 비판을 이어갔다.

스티글리츠 교수는 "한창 버블이 확산될 때는 그 흥을 깨고 싶지 않은 게 정책 당국자들의 심리"라며 "미국도 흥을 깨고 싶지 않아 적절한 타이밍에 대처하지 못한 게 요즘 문제가 되고 있다"고 그린스펀 전 의장을 다시 겨냥했다.

한편 스티글리츠 교수는 과열 양상을 보이고 있는 중국 주식시장에 대해 "버블은 언젠가 붕괴되게 마련"이라며 "문제가 심각해지기 전에 터뜨리는 게 낫다"고 충고했다.

그는 "현재 중국 정부는 내국인의 해외 투자를 장려해 투자 열기를 해외로 분산하는 정책을 취하려 하는데,이는 바람직한 방향"이라며 "단기적인 투기성 자본에 대해 자본소득세를 부과하는 방안도 고려해 볼 만하다"고 조언했다.

그는 서울시의 금융허브 노력에 대해 "아시아에 반드시 금융 허브가 한 곳만 있을 필요는 없다"며 "서울은 이미 기술과 인적 자본,지리적 위치 등 세계적인 금융허브 도시로서의 조건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글로벌 투자자들의 포트폴리오 운영에 한 축을 담당할 수 있도록 규제 개혁 등의 노력을 강화해야 할 것"이라고 충고했다.

스티글리츠 교수는 2001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바 있으며 1997년부터 2000년까지 세계은행 수석 부총재를 역임했다.

그의 저서 '세계화와 그 불만(Globalization and Its Discontents)'은 세계 35개국 언어로 번역돼 100만부 이상 팔렸다.

송종현 기자 screa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