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택수 <시인>

말순이는 지저분한 아이다.

어린 나는 그 애와 짝이 되었다는 게 여간 속상한 게 아니다.

계집애가 얼마나 칠칠맞지 않으면 용의 검사 때마다 매번 선생님에게 야단을 맞는단 말인가.

소매가 너덜너덜 남루해진 옷은 그렇다 치고,손에 밴 때라도 깨끗하게 씻고 다니면 좀 좋으냐 말이다.

반 아이들은 말순이를 '쿤타킨테'라고 불렀다.

알렉스 헤일리의 원작을 드라마한 외화 '뿌리'에 나오는 흑인 주인공의 이름을 따서 그렇게 놀려대곤 했다.

'말순이 말순이 쿤타킨테 말순이는 손톱 끝에 까마귀를 키우고 살지요' 몇몇 악동들은 숫제 동요 가락에 맞춰 노골적인 야유를 보내기까지 했다.

그러다 보니 말순이는 늘 혼자였다.

점심시간에는 교실 귀퉁이에서 혼자 밥을 먹었고,쉬는 시간에도 운동장 복판에서 밀려나 그늘진 곳에 앉아 있다 오기 일쑤였다.

방과 후에 반 아이들이 끼리끼리 모여서 놀고 있을 때도 말순이는 그 자리에 있지 않았다.

생일 파티 초대장을 돌릴 때도 당연히 말순이는 건너 뛰게 마련이었다.

한번은 반에서 분실 사건이 일어났다.

아마도 육성회비를 내는 날이었나 보다.

아이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말순이를 지목했다.

말순이는 겁 많은 눈망울로 머리를 가로저었다.

그리고 도움을 원하듯 간절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말순이가 도둑이 아니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죄가 있다면 청결하지 못하다는 것 뿐,내가 옆에서 지켜 본 말순이는 도저히 그런 짓을 할 아이가 아니었다.

매일같이 아이들의 놀림을 당해도 누구를 원망하는 대신 물기가 살짝 괸 눈으로 구름을 쳐다보며 마음이 차분해지길 기다릴 줄 알던 아이가 아니던가.

그러나 나는 그 눈빛을 차갑게 외면했다.

이 상황에서 말순이 편을 들었다간 무슨 불이익을 당하게 될지도 모르는 것이다.

나는 '쿤타킨테'의 친구가 되기 싫었다.

그때,말순이의 울음이 터진 것 같다.

마개가 뽑힌 채 엎질러진 병처럼 말순이의 울음은 좀처럼 그치질 않았다.

아이들은 그제야 '아니면 말지,울긴 왜 울고 난리야'하는 표정으로 등을 돌렸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지 26년 만에 내가 자란 마을을 찾았다.

사진작가와 함께 부산의 모 일간지에 에세이를 연재하고 있었는데,취재차 연탄 보급소를 찾았을 때였다.

그곳은 우연히도 내가 유년시절을 보낸 그 마을 부근에 있었다.

수소문 끝에 찾아간 연탄 보급소는 근동에 유일하게 남은 보급소였다.

40년이 넘었다는 이 보급소는 그 연륜도 연륜이지만 부녀가 함께 운영하는 것으로 더 유명했다.

사람들은 특히 시집도 가지 않은 채 연로하신 아버지를 모시고 연탄배달을 하는 그 집의 기특한 따님에 대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갸가,어렸을 때부터 참 착했제.학교만 마치면 집에 와서 아버지 연탄 수레를 안 밀었나.

이 동네 사람들 치고 그 집 딸 도움 없이 겨울 난 사람은 없을 끼다 아마.하모,지금도 독거노인들한테는 한 장당 20~30원씩 싸게 배달한다 카더마.그 집 문 닫으면 큰일이다 아이가."

잔뜩 기대를 품고간 보급소에서 그녀를 만났다.

마침 생탄을 말리고 있던 그녀 앞에서 나는 전신이 마비라도 된 듯 뚝,얼어붙고 말았다.

볕 좋은 날 생탄을 말려 놓아야 불이 잘 타고,400g정도 무게도 줄어든다고,그래야 유독가스도 덜 하다고,마치 삶도 그런 것이 아니겠느냐고 조근조근 들려주는 그녀.바로 말순이었다.

연탄재가 손금에 배겨 지워지지 않는 손으로 반갑게 맞아주는 그녀 앞에서 나는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26년이 지난 뒤에야 비로소 내가 부끄러워했던 짝의 손톱 밑에 밴 때가 우리의 겨울을 지켜준 온기였음을 알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