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품으로 TV 내놨더니 손님 장사진"

"카자흐스탄에 와서 중고 '지굴리' 자동차로 매일 100㎞ 이상 운전하면서 재래시장 상인들을 거래처로 만들었어요.

저녁에 집에 오면 몸이 파김치가 되더라고요."

대학을 졸업하던 1996년 옷가방 하나와 2만달러를 들고 카자흐스탄에 와 보따리 무역을 시작한 임병율 대종 사장(37).그는 카자흐스탄 알마티에서 사업한 지 11년 만에 회사를 카자흐스탄 '프림' 시장의 양대 봉우리 중 하나로 키웠다.

카자흐스탄의 프림 시장은 대략 800만~1000만달러 규모.독일 제품이 장악해온 이 시장을 2003년부터 한국 제품이 점령하고 있다.

대기업인 동서식품과 함께 카자흐스탄 시장을 양분한 또 다른 한국 제품은 국내 중소기업인 서강유업의 '점보'다.

잘 알려지지 않은 점보를 카자흐스탄의 양대 브랜드로 키운 주인공이 임 사장이다.

대종이 올해 서강유업의 카자흐스탄 브랜드인 점보로 올릴 예상 매출액은 400만~500만달러.

그는 "초기엔 한국에서 보따리로 들여온 양말 스타킹을 알마티 재래시장 상인들한테 팔았다"고 말했다.

시장 상인들은 처음엔 말도 잘 못하는 외국 사람이 와 장사만 방해한다며 임 사장을 외면했다.

이에 굴하지 않고 매일 30개 시장을 찾은 임 사장의 억척은 마침내 4개월 만에 알마티 60개 재래시장에서 130여개 점포를 거래처로 만들었다.

임 사장은 판매 품목을 늘리기 위해 화장지 공장을 세웠다가 저가 중국산에 밀려 투자자금을 다까먹고 6개월 만에 공장문을 닫는 어려움에 처하기도 했다.

이때 임 사장에게 힘을 보탠 것은 시장 상인들.상인들은 임 사장에게 "카자흐스탄 사람들이 홍차에 즐겨 타먹는 '프림'을 팔아보면 어떻겠느냐"고 권유했다.

임 사장은 1997년 9월 알마티 옵토브카 시장에 컨테이너 두 동을 사 10평짜리 점포를 내고 거래처를 대상으로 프림을 팔았다.

임 사장은 "친구 자동차를 저당잡히고 마련한 돈으로 서강유업에서 프림 400박스를 들여왔는데 열흘 만에 동났을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고 설명했다.

임 사장은 알마티에서 그동안 누구도 하지 않았던 무료 시음 및 경품 행사를 시도하면서 성장의 발판을 마련했다.

그는 "행사를 한 1998년 10월 이후 하루 판매량이 5~6배나 뛰었다"며 "TV 한 대를 경품으로 내놓았는데 매일 수십m씩 줄을 섰을 정도로 폭발적이었다"고 소개했다.

임 사장은 1999년부터 알마티를 벗어나 지방 재래시장 공략에 나섰다.

알마티에서 300~500㎞ 떨어져 있는 지방도시의 재래시장을 누빈 지 3년 만인 2001년에 15개 주요 도시를 중심으로 전국 판매망을 갖췄다.

최근 들어서는 키르기스스탄과 우즈베키스탄에도 진출하는 등 중앙아시아 전역으로 시장을 넓히고 있다.

임 사장은 "요즘 이들 국가를 매달 방문해 현지 거래인을 만나고 신규 거래처를 확보하느라 쉴 틈이 없다"고 말했다.

올 1월부터 카자흐스탄 한인회 사무처장을 맡고 있는 임 사장은 앞으로 알마티에 대규모 식품공장을 세우겠다는 포부를 갖고 있다.

임 사장은 "힘들었지만 재래시장 상인들과 밑바닥에서부터 몸을 부딪치며 쌓은 신뢰가 사업의 큰 재산"이라고 강조했다.

알마티(카자흐스탄)=이계주 기자 leer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