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換亂10년 … 끝나지 않은 위기] (下) 정부규제 완화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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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부진 … 경제활력 환란前3분의1
성장동력 잃어 고용시장도 큰 타격
'한강의 기적'을 일궈 낸 주역이면서도 외환위기 주범으로 몰린 한국의 대기업들은 당시 정부가 설정한 환란 극복의 목표와 비전 시간표 우선순위 등을 군말 없이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대신 정부는 기업 활동에 관한 각종 규제를 철폐하겠다고 약속했다.
정부가 과도하게 틀어쥐고 있는 규제 권한이 필연적으로 정경 유착을 부르고 결국 그것이 외환위기를 초래한 원인이 됐다는 인식에서다.
김대중 대통령은 '임기 내'로 시한을 못박고 규제 총량을 반으로 줄이겠다고 공언했다.
지난 10년간 약속대로 정부 규제가 줄었을까.
규제개혁위원회의 집계에 따르면 1998년 1만554건이던 정부 규제는 2006년 말 8083건으로 줄기는 줄었다.
하지만 기업 활동과 경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재정경제부(388건→422건) 공정거래위원회(75건→167건) 금융감독위원회(548건→549건) 등이 쥔 규제 권한은 오히려 늘어났다.
규제 완화가 생색 내기에 그쳤다는 얘기다.
특히 공정위는 경제력 집중을 막는다며 외환위기 때 폐지했던 출자총액 제한제도를 부활시켰다.
기업집단지정제도,계열사 간 내부거래 공시 등 사전 규제는 그대로 유지하면서 하도급 규제,시장지배적 지위 남용 등 사후적 규제까지 강화했다.
그 결과 규제 건수가 두 배 이상 늘었다.
이에 대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시장 경쟁과 직접적으로 관련되지 않는 '재벌 이슈'를 지속적으로 다루기보다는 관심과 자원을 효율성 목표와 명백하게 관련된 수단에 집중시키는 게 좋다"고 권고하기도 했다.
1998년 김대중 대통령은 환란 극복을 위한 '5+3 원칙'을 제시했다.
재계에 △경영투명성 제고 △상호 지급보증 해소 △재무구조 개선 △핵심기업 설정 △지배주주와 경영자 책임 강화 등 '5대 기본 과제'와 △금융지배 차단 △순환출자 억제 △부당내부거래 근절 등 '3대 보완 과제'를 주문한 것이다.
기업들은 이 같은 '5+3 원칙'에 맞춰 사외이사 제도를 받아들여 경영 투명성을 높였고 계열사 간 신규 채무 보증은 아예 금지됐으며 소수 주주권이 제도적으로 보장되면서 오너의 전횡은 더 이상 불가능해졌다.
순환 출자를 해소하고 단순 지배구조를 갖춘 지주회사 전환 기업이 올해 8월 말까지 40개에 이르는 등 지배구조도 상당히 개선됐다는 평가다.
투명 경영으로 외환위기를 극복해 낸 한국 기업들은 이제 '투자 부진'이라는 근본적인 문제에 봉착해 있다.
그런데 기업들은 투자하고 싶어도 방법이 없다고 아우성이다.
첩첩산중의 규제 때문이다.
우선 입지 경쟁력이 뛰어난 수도권에 대기업은 발조차 붙이기 어렵다.
한국경제연구원의 규제개혁 종합 연구에 따르면 수도권에 가해지는 입지 규제 관련 법률은 수도권정비계획법 개발제한구역법 한강수계법 특정지역개발촉진법 등 9개에 달한다.
이 법들은 과밀억제 환경보전 공간구조개편 등을 명분으로 대기업의 신규 진출을 막고 있다.
참여정부 들어서는 여기에 '지역 균형발전'이라는 정치 논리까지 가세해 수도권 규제 완화 가능성이 더욱 희박해졌다.
이주선 한국경제연구원 기업연구본부장은 "기업이 수도권에 몰리면 비수도권 지역의 발전이 저해된다는 전제부터 잘못됐다"며 "지역 경제가 어려운 것은 투자가 수도권에만 집중돼서가 아니라 신규 투자 자체가 워낙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또 정부가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부어 개발하기로 한 인천경제자유구역 역시 국내 대기업들에는 '그림의 떡'이다.
경제자유구역이라면서도 수도권정비계획법 등 일반법의 적용을 배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경제자유구역에 외국인 투자를 끌어들이기 위해서라도 국내 대기업의 선행적인 투자를 허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 밖에도 정부가 쌓고 있는 첩첩산중의 규제는 기업들을 숨막히게 하고 있다.
공정위는 글로벌 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인수·합병(M&A)까지 기업결합 제한으로 막고 있고 여전히 6개 주요 대기업 집단을 출총제에 사슬로 묶어 두고 투자할 자유를 빼앗았다.
삼성경제연구소에 따르면 노동ㆍ자본 투입량 등을 종합한 한국 경제의 양적 성장지표는 1991~97년 1.50을 기록하다 2003~2006년 0.45로 1.05포인트 떨어졌다.
경제 활력이 3분의 1로 쪼그라들었다는 얘기다.
기업의 투자 부진에 따른 자본 축적 감소는 노동 투입 둔화를 부르고 그것이 다시 기업의 매출 증가세 약화로 이어지는 악순환에 빠져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기업 투자 부진을 해결해 '저성장의 늪'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규제 완화밖에 다른 대안이 없다고 입을 모은다.
정부가 기업에 대한 영향력을 놓지 않기 위해 후진적인 규제 체계 속에 안주한다면 환란과 같은 경제 위기는 언제든 다시 찾아올 수 있다는 지적까지 나온다.
현정택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은 "기존의 진입 규제(정부 독점 지정·인가·허가·면허·승인 등)를 현 수준의 절반으로 줄일 경우 총요소 생산성 증대를 통해 잠재 성장률을 0.5%포인트 끌어올릴 수 있다"고 분석했다.
차기현 기자 khcha@hankyung.com
성장동력 잃어 고용시장도 큰 타격
'한강의 기적'을 일궈 낸 주역이면서도 외환위기 주범으로 몰린 한국의 대기업들은 당시 정부가 설정한 환란 극복의 목표와 비전 시간표 우선순위 등을 군말 없이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대신 정부는 기업 활동에 관한 각종 규제를 철폐하겠다고 약속했다.
정부가 과도하게 틀어쥐고 있는 규제 권한이 필연적으로 정경 유착을 부르고 결국 그것이 외환위기를 초래한 원인이 됐다는 인식에서다.
김대중 대통령은 '임기 내'로 시한을 못박고 규제 총량을 반으로 줄이겠다고 공언했다.
지난 10년간 약속대로 정부 규제가 줄었을까.
규제개혁위원회의 집계에 따르면 1998년 1만554건이던 정부 규제는 2006년 말 8083건으로 줄기는 줄었다.
하지만 기업 활동과 경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재정경제부(388건→422건) 공정거래위원회(75건→167건) 금융감독위원회(548건→549건) 등이 쥔 규제 권한은 오히려 늘어났다.
규제 완화가 생색 내기에 그쳤다는 얘기다.
특히 공정위는 경제력 집중을 막는다며 외환위기 때 폐지했던 출자총액 제한제도를 부활시켰다.
기업집단지정제도,계열사 간 내부거래 공시 등 사전 규제는 그대로 유지하면서 하도급 규제,시장지배적 지위 남용 등 사후적 규제까지 강화했다.
그 결과 규제 건수가 두 배 이상 늘었다.
이에 대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시장 경쟁과 직접적으로 관련되지 않는 '재벌 이슈'를 지속적으로 다루기보다는 관심과 자원을 효율성 목표와 명백하게 관련된 수단에 집중시키는 게 좋다"고 권고하기도 했다.
1998년 김대중 대통령은 환란 극복을 위한 '5+3 원칙'을 제시했다.
재계에 △경영투명성 제고 △상호 지급보증 해소 △재무구조 개선 △핵심기업 설정 △지배주주와 경영자 책임 강화 등 '5대 기본 과제'와 △금융지배 차단 △순환출자 억제 △부당내부거래 근절 등 '3대 보완 과제'를 주문한 것이다.
기업들은 이 같은 '5+3 원칙'에 맞춰 사외이사 제도를 받아들여 경영 투명성을 높였고 계열사 간 신규 채무 보증은 아예 금지됐으며 소수 주주권이 제도적으로 보장되면서 오너의 전횡은 더 이상 불가능해졌다.
순환 출자를 해소하고 단순 지배구조를 갖춘 지주회사 전환 기업이 올해 8월 말까지 40개에 이르는 등 지배구조도 상당히 개선됐다는 평가다.
투명 경영으로 외환위기를 극복해 낸 한국 기업들은 이제 '투자 부진'이라는 근본적인 문제에 봉착해 있다.
그런데 기업들은 투자하고 싶어도 방법이 없다고 아우성이다.
첩첩산중의 규제 때문이다.
우선 입지 경쟁력이 뛰어난 수도권에 대기업은 발조차 붙이기 어렵다.
한국경제연구원의 규제개혁 종합 연구에 따르면 수도권에 가해지는 입지 규제 관련 법률은 수도권정비계획법 개발제한구역법 한강수계법 특정지역개발촉진법 등 9개에 달한다.
이 법들은 과밀억제 환경보전 공간구조개편 등을 명분으로 대기업의 신규 진출을 막고 있다.
참여정부 들어서는 여기에 '지역 균형발전'이라는 정치 논리까지 가세해 수도권 규제 완화 가능성이 더욱 희박해졌다.
이주선 한국경제연구원 기업연구본부장은 "기업이 수도권에 몰리면 비수도권 지역의 발전이 저해된다는 전제부터 잘못됐다"며 "지역 경제가 어려운 것은 투자가 수도권에만 집중돼서가 아니라 신규 투자 자체가 워낙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또 정부가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부어 개발하기로 한 인천경제자유구역 역시 국내 대기업들에는 '그림의 떡'이다.
경제자유구역이라면서도 수도권정비계획법 등 일반법의 적용을 배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경제자유구역에 외국인 투자를 끌어들이기 위해서라도 국내 대기업의 선행적인 투자를 허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 밖에도 정부가 쌓고 있는 첩첩산중의 규제는 기업들을 숨막히게 하고 있다.
공정위는 글로벌 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인수·합병(M&A)까지 기업결합 제한으로 막고 있고 여전히 6개 주요 대기업 집단을 출총제에 사슬로 묶어 두고 투자할 자유를 빼앗았다.
삼성경제연구소에 따르면 노동ㆍ자본 투입량 등을 종합한 한국 경제의 양적 성장지표는 1991~97년 1.50을 기록하다 2003~2006년 0.45로 1.05포인트 떨어졌다.
경제 활력이 3분의 1로 쪼그라들었다는 얘기다.
기업의 투자 부진에 따른 자본 축적 감소는 노동 투입 둔화를 부르고 그것이 다시 기업의 매출 증가세 약화로 이어지는 악순환에 빠져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기업 투자 부진을 해결해 '저성장의 늪'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규제 완화밖에 다른 대안이 없다고 입을 모은다.
정부가 기업에 대한 영향력을 놓지 않기 위해 후진적인 규제 체계 속에 안주한다면 환란과 같은 경제 위기는 언제든 다시 찾아올 수 있다는 지적까지 나온다.
현정택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은 "기존의 진입 규제(정부 독점 지정·인가·허가·면허·승인 등)를 현 수준의 절반으로 줄일 경우 총요소 생산성 증대를 통해 잠재 성장률을 0.5%포인트 끌어올릴 수 있다"고 분석했다.
차기현 기자 khc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