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 英 珠(이영주) < 사법연수원 교수·검사 lyj1@scourt.go.kr >

변호사인 남편은 주말에도 종종 사건 관련 전화를 받는다.한번은 지방에서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친구로부터 몇 차례 전화가 걸려오더니,결국 지방까지 내려가 상담을 하고 경찰서에 동행했다가 돌아왔다.나중에 들으니 동창은 잘못이 인정되지 않아 입건도 되지 않았단다.결과는 다행스러웠지만,그 동창은 한동안 마음을 크게 졸였을 것이다.만일 그 회사에 사내변호사가 있었다면 회사가 부딪칠 수 있는 법적 문제점들을 미리 검토해 위험을 예방하거나,문제가 생겨도 덜 당황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100대 기업조차 사내변호사가 없는 회사가 절반 가까이 되고,사법연수원 수료생의 기업 진출도 부진하다.대부분의 기업은 문제가 생기면 그때 가서 변호사를 쓰는 게 경제적이라고 생각하고,사법연수생들도 처우나 미래의 불확실성 때문에 법원 검찰 로펌 이외의 분야로 진출하기를 주저하기 때문이다.

사법연수원은 기업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사내변호사가 필수적이란 인식을 갖고 있다.

이 때문에 기업 관련 과목을 강화하는 등 기업이 필요로 하는 법률전문가 육성을 위해 애쓰고 있다.조근호 사법연수원 부원장은 기업이 지출하는 막대한 접대비 중 일부만이라도 법률서비스 비용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하곤 한다.

내년 1월 사법연수원을 수료하는 37기 연수생들은 그 어느 때보다 강도 높은 연수과정을 마치고 진로를 고민하고 있다.이번 주에는 사법연수원에서 취업박람회도 열린다.그런데 최근 사내변호사였던 K 변호사의 대기업 로비 관련 폭로로 야기된 사회적 파장은 폭로의 취지나 진위를 떠나 사내변호사 제도를 오해하게 하고,활성화에 찬물을 끼얹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이런 어려움에도 능력있는 사법연수생들이 움츠러들지 말고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고,기업에서도 이들을 적극적으로 채용하고 활용했으면 좋겠다.그래서 법조인들의 역할이 확대되고 사회 발전에 기여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이미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법이 국회를 통과하고,로스쿨 정원도 현재 사법시험 합격자 수의 두 배에 이르는 2000명으로 확정됐다.존 그리샴의 소설 '레인메이커' 주인공은 높은 학비를 어렵게 만들어 로스쿨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지만 정작 취업문을 뚫지 못해 전전긍긍하고,처음에는 교통사고나 폭력 피해자를 찾아 병원 휴게실을 출입하는 신세가 된다.우리 사회에 그런 변호사들이 양산되는 것은 그 누구도 원치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