춥고…흐리고… 故 이병철 회장 20주기 추도식

"이렇게 조촐하게 치를 행사가 아니었는데…"(삼성그룹 A임원)

삼성그룹 창업주인 고(故) 이병철 회장의 20주기인 19일.서울 태평로 삼성 본관의 분위기는 이날 날씨 만큼이나 춥고 어두웠다.

'사업보국(事業報國)'이란 경영철학으로 삼성을 국내 최고 기업으로 키워낸 고 이병철 회장의 20주기라는 뜻깊은 날이지만 올해 추도행사는 여느 해보다 조촐하게 진행됐다.

김용철 변호사의 비자금 의혹제기로 반(反)삼성 여론이 재점화되면서 위기상황을 맞고 있기 때문이다.




이날 경기도 용인 호암미술관 내 묘역에서 열린 추도식은 이건희 삼성 회장과 이인희 한솔그룹 고문, 이명희 신세계 회장이 불참한 가운데 이재현 CJ그룹 회장,홍라희 리움미술관장,이재용 삼성전자 전무 등 범(汎)삼성 가족들과 이학수 삼성전략기획실장,윤종용 삼성전자 부회장,이현재 호암재단 이사장,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 등 그룹 전문경영인과 외부 초청인사만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됐다.

이건희 회장은 신병치료를 위해 미국에 머물렀던 2002년과 2005년에 추도식에 불참한 적이 있지만,국내에 머물면서 추도식에 참석하지 않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삼성 측은 "갑자기 날씨가 추워져 (이 회장이) 감기 몸살에 걸린 것 같다"며 "건강에 특별히 이상이 생긴 것은 아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그룹 안팎에서는 이 회장의 불참을 최근 상황과 무관치 않은 것으로 보는 분위기다.

그룹의 한 관계자는 "지금은 그룹의 모든 경영활동이 정지된거나 다름없는 상황"이라며 "아직 내년도 사업계획조차 짜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지켜보는 이 회장의 마음이 착잡하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삼성은 올해 선대 회장 20주기와 이건희 회장 취임 20주년(12월1일)을 그룹의 새로운 전기(轉機)로 삼는다는 계획이었다.

이를 위해 고 이병철 회장의 자서전(호암자전) 증보판을 발간하고 12월5일엔 대대적으로 이 회장 취임 2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를 가질 예정이었다.

하지만 비자금 의혹제기 이후 삼성은 당초 예정했던 주요 행사를 취소하거나 축소키로 했다.

그룹 관계자는 "현재로선 비자금 의혹사건이 조기에 수습될 것 같지가 않다"며 "이건희 회장의 새 경영화두인 창조경영을 통해 새로운 10년을 대비하려는 당초 계획이 차질을 빚게 됐다"고 전했다.

한편 이날 경남 의령에서는 이중구 삼성테크윈 사장 등 그룹 관계자들과 지역주민 등 800명이 참석한 가운데 '호암(고 이병철 회장 호) 선생 생가' 개방식이 열렸다.

그동안 관리상의 문제로 일반인에게 공개되지 않았던 호암 생가는 앞으로 월요일을 제외하고 매일 오전10시부터 오후5시까지 개방된다.

이태명/의령=김태현 기자 chihir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