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황제 및 고관대작들이 즐겨 먹던 음식인 공부연(孔府宴)의 대가(大家)가 조선호텔 초청으로 20일 한국을 찾았다.

왕싱란(王興蘭ㆍ63) 대사(大師)는 문화혁명으로 명맥이 끊길 뻔한 공부연을 1981년 중국 정부가 되살릴 때 간택받은 3인의 계승자 중 한 명이다.

"공부연은 유학을 숭상하는 중국 역대 황제들이 공자 집안을 찾을 때마다 공자의 후손들이 대접했던 요리를 집대성한 겁니다.

베이징 요리의 모태이자 오늘날 모든 중국 요리의 원형이기도 하고요.

정부가 저한테 대사라는 칭호를 내린 것은 이 같은 공부연의 정수를 전 세계로 알리라는 뜻에서입니다."

왕 대사가 강조하는 공부연의 핵심은 "눈으로도 맛을 즐길 수 있도록 한다"는 것.무림 고수들을 뺨치는 수준으로 '칼 솜씨'의 내공을 길러야 하는 건 기본이다.

식재료 중 가장 부스러지기 쉬운 연두부로 꽃을 빚고,심지어 사람 얼굴 모양까지 조각할 수 있어야 한다.

그가 공부연과 인연을 맺은 것은 36살 때다.

"1981년 산둥성 성도인 지난시(市)가 공부연을 되살리겠다며 참여를 요청해 왔습니다.

세 명이 선택받았는데 두 명은 자료 해석을 맡았고,요리를 직접 재현한 것은 저 혼자뿐이었지요."

스승은 당시 생존해 있던 두 명의 청 황실 어전 요리사가 맡았다.

"인민해방군이 산둥성에 밀려들자 공부연 계승자인 공자의 76대손 부부가 요리사들을 데리고 대만으로 건너갔어요.

1966년 문화혁명이 일어나면서 공자와 관련된 것들이 철저히 파괴됐죠.다행히 제 스승들이 어렴풋이나마 서태후 회갑연 때 진상된 공부연을 기억하고 있어 복원이 가능했습니다."

공부연의 계승자로 뽑힐 무렵,왕 대사는 이미 산둥성 일대에선 최고의 탕(湯) 요리 전문가이자 보기 드문 여자 요리사로 명성을 날리고 있었다.

"공부연의 요리들은 화려한 칼 기예뿐만 아니라 여자의 섬세함이 무엇보다 중요한 분야죠.탕 요리를 잘한다는 것도 도움이 됐습니다.

108가지나 되는 공부연 요리의 가장 기본은 탕이거든요."

이름난 장인(匠人)의 인생이 늘 그렇듯 왕 대사도 밑바닥 생활부터 실력을 차근차근 쌓았다.

"13살 때 요리를 처음 배우기 시작했어요.

중국과 소련 간 영토 분쟁이 한창이던 무렵으로 모두 다 가난하고 배고팠던 시절입니다.

음식점에 취직하면 밥은 마음껏 먹을 수 있겠다고 생각해서 취펑더라는 청 말기에 생긴 지난시에서 가장 오랜된 식당에 종업원으로 들어가 3년 동안 야채 써는 일만 했습니다."

당시만 해도 여자들은 딤섬(만두 등의 간이 요리)이나 빚을 뿐 불을 다뤄서는 안 된다는 편견이 있었다.

"일 못 배우게 할까봐 칼질하다 피가 나면 뜨거운 물에 몰래 손을 담그곤 했어요.

그렇게 하면 피가 멈추거든요." 왕 대사는 칼집으로 흉터가 가득한 손을 보여주며 환하게 웃었다.

왕 대사는 요즘 중국 정부의 적극적인 후원 아래 공부연의 세계화를 위해 세계 곳곳을 누비고 있다.

그의 명함에 찍힌 직함만도 국제 중국 요리대사,산둥요리연구회 회장,국제 조리시험 심판위원 등 3개에 달한다.

"중국 정부는 공부연의 확대ㆍ계승을 경제발전 계획안에 포함시킬 정도로 전통 요리 발전에 많은 돈을 투자하고 있습니다.

저와 같은 각 요리 분야의 대사가 전국에 1000여명 있는데 이들마다 정부가 활동비로 매달 일정액을 보조금으로 지급하고 있어요."

특히 공부연의 현대화에 힘을 쏟고 있다.

"공부연의 요리들은 2000년도 넘은 옛 조리 방법을 그대로 고수하고 있습니다.

육류보다는 야채,두부 등을 선호하는데 이것을 센 불에 짧게 조리해 원재료의 즙을 그대로 살리는 게 특징이에요.

하지만 요즘은 글로벌 흐름에 맞춰 현대인의 입맛에 맞는 요리들을 개발하는 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지난 19일 한국에 도착해 맛본 음식이 무엇인지 물었다.

"저녁에 삼계탕과 인삼주를 먹었습니다.

정말 감탄했어요.

한국 사람들은 삼계탕을 여름에 먹는다고 하는데 산둥성처럼 겨울이 길고 추운 곳에 가져가면 크게 인기를 끌 것 같습니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


◆공부연(孔府宴)이란=중국 각지로 흩어졌던 공자 가문 규수들이 공자의 고향인 취푸(曲阜)까지 요리사를 데리고 와 수백년 동안 잔치를 열면서 발전해 왔다.

청나라 말기의 서태후 때 회갑연이 공부연의 절정으로 당시 서태후 부부에게 각각 108가지 요리가 진상됐다.

공부연은 1등급이 서태후 연(宴)에 선보였던 만한전석 등 황제 일가를 위한 요리라면 2등급은 귀족 등의 생일 혼인일 기일 등에 접대하는 음식이다.


◆중국 요리 식사예절,이런 건 알아두세요=젓가락으로 요리를 찔러 먹어서는 안되며,식사 도중에 젓가락을 식기 안에 넣어서도 안된다.

밥을 먹을 때는 고개를 숙여서는 안된다.

밥공기를 들고 먹어야 한다.

음식은 완전히 비우지 않는 게 예의다.

주인이 자신의 요리가 부족하다는 뜻으로 생각할 수 있어서다.

생선은 뒤집어 먹어선 안된다.

술이나 차를 따를 때 주전자 주둥이 부분이 사람쪽을 향해선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