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준 BBK투자자문 전 대표 가족에 대한 신뢰가 약해지고 있다.

본인들은 큰 잘못이 없다고 하지만 주변 상황이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다.

김씨 가족들은 BBK의 실소유자가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후보라는 것을 입증할 이면계획서 원본을 당초 약속과 달리 내놓지 못했다.

또 기자회견 주최자도 에리카 김에서 갑자기 김씨 부인인 이보라씨로 바꿔 취재진의 김을 뺐다.

에리카 김의 변호사 자격도 취소된 것으로 확인됐다.

최근에는 김씨 변호인인 박수종씨가 돌연 사퇴해 김씨 주변은 연일 악재가 겹쳤다.

김씨 가족에 대한 신뢰도 하락은 21일 김씨 가족이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연 기자회견이 계기가 됐다.

회견 장소를 에리카 김 사무실에서 느닷없이 LA시내 윌셔플라자 호텔로 바꾸었다.

회견시간도 1시간40분 이상 늦게 시작됐다.


당초 기자회견장에 나올 계획이던 에리카 김 대신 김씨의 부인인 이보라씨가 마이크를 잡았다.

정작 이날 하이라이트인 이면계약서 원본도 공개되지 않았다.

에리카 김은 전날 여러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김씨와 이 후보가 작성했다는 이면계약서의 원본을 공개하겠다고 수차례 공언했다.

하지만 몇시간 만에 '공수표'가 됐다.

이보라씨는 "원본이 너무 중요한 서류이기 때문에"라고 이유를 달았다.

또 "이 후보(한나라당 이명박 후보)가 본인의 친필을 위장하기 위해 변조된 사인을 할 수 있다"며 역공을 펴기도 했다.

이씨는 원본을 23일 공개하겠다고 했지만 실제 이뤄질지는 불투명한 상태다.

에리카 김 대신 이씨가 나온 것도 석연치 않다는 지적이다.

미국에서 성공한 변호사로 평가받았던 김씨가 기자회견을 열 경우 폭발력을 가질 것으로 예상됐었다.

이날 직접 회견장에 나타나지 못한 것은 최근 서류위조와 돈세탁 등 네 가지 혐의로 미국 법정에서 유죄를 선고받아 변호사 면허가 반납된 것과 무관치 않은 것으로 보인다.

동생인 김경준씨 역시 미국여권 7장 등을 위조하는 등의 '전력'을 갖고 있다.

최근 박수종 변호사의 돌연 사임도 김씨 패밀리와 관련해서는 좋은 징조가 아니다.

이렇게 큰 사건에 변호인이 갑자기 중도하차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박 변호사 개인적인 판단에 따른 것이든,아니든 변호인의 사임은 김씨 측 신뢰도를 상당 부분 깎아 먹는다는 게 법조계의 지적이다.

일각에서는 이씨가 약속한 23일 이면계약서의 원본을 공개한다면 역전을 노려볼 수 있을 것으로 점치고 있다.

그러나 원본이 없다면 김씨 측 주장은 공감대를 얻기 힘들어 보인다.

김홍일 서울중앙지검 3차장검사도 이날 브리핑에서 "김씨가 입국 후 이면계약서라고 주장하는 서면의 사본을 몇 부 제출해 내용의 진위와 '진정 성립 여부' 등을 확인하고 있으나 사본 상태에서는 성립의 진정 여부를 확인하는데 어려움이 많다"며 김씨 측에 원본 제출을 요구했다.

김 차장은 "피의자가 어떤 주장을 하든 확인해봐야 하는 것이 검찰의 기본적인 수사책무 아니겠느냐"며 수사의 '속도'보다 실체적 진실 발견에 더 무게를 두고 있음을 재확인했다.

결국 원본의 진실만이 사건의 실체를 밝혀줄 유일한 단서라는 지적이다.

김병일 기자 kb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