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큰 불행에 대해서는 쉽게 체념을 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조금 서운하거나 기분 나쁜 일에 대해서는 좀체 감정을 억제하지 못한다.

큰 사건에는 관대하면서 사소한 일에는 민감하다고나 할까.

하루에도 이런 사소한 기분 나쁜 일들은 수없이 일어나는데,자칫 감정조절이 안돼 예기치 못한 문제들이 터지곤 한다.

그래서 종종 포커 페이스가 거론된다.

감정의 동요가 없다는 듯 얼굴에 평상심의 표정을 지으면서 속마음을 드러내지 말라는 것이다.

직장생활에서 포커 페이스는 유용하게 쓰인다.

상사에게 어려움을 건의하거나,까다로운 상부의 지시를 아래에 전달할 때,자신의 판단과는 무관하다는 느낌이 들도록 차분하고 건조한 말투를 쓴다.

감정을 최대한 절제하는 얼굴표정이 상책이라는 얘기다.

특히 우리나라 직장인들은 감정조절을 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리서치 전문기관인 엠브레인의 조사를 보면 직장인들의 93%가 화가 나도 안난 척하는 포커 페이스를 유지한다고 대답했다.

가장 큰 이유는 자신에 대한 평판이 나빠질까봐 우려하기 때문이라는데,순수한 감정이 아님은 물론이다.

연기자처럼 속내를 감추고 지내는 직장인들의 마음은 편치 않다.

'내가 왜 이래야 되나'고 자탄하며 우울증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원래의 감정과 성격을 드러내지 못해 겪는 울화병이기도 하다.

1차 2차로 이어지며 만취해야 직성이 풀리는 우리의 음주문화도 이 같은 직장문화와 무관치 않을 게다.

속마음을 감추고 다르게 행동하는 포커 페이스에는 상대방에 대한 불신이 깔려 있다.

자신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면 미움을 사고,결국 앙갚음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피해의식이 포커 페이스를 부추기고 있기도 하다.

감정은 외부와 소통하는 창이라고 하는데 그 창에 서리가 끼어 흐려진다면 이는 여간 큰 일이 아니다.

억지로 감정을 삭이기 보다 자연스럽게 감정을 승화시키는 스스로의 방법을 터득해야 할 것 같다.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