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은 정치권이 22일 '삼성 비자금' 특검법 처리에 합의하자 검찰의 수사든, 특별검사 수사든 "수사에 성실히 임하겠다"는 원칙적인 입장을 밝히면서도 착잡한 모습을 감추지 못했다. 삼성 관계자는 "어떤 형식의 수사든 진실을 규명한다는 차원에서 성실히 임하겠다는 것이 기본 입장"이라면서도 정치권의 특검 합의에 대해서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소지가 있어 어떤 논평이나 입장도 밝히지 않기로 했다"며 신중한 태도를 유지했다. 삼성 관계자들은 그러나 특검이 시작되면 장기 수사가 불가피한 데다 수사 범위와 규모가 커질 수밖에 없어 경영에 큰 지장을 줄 것이라며 착잡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삼성 임직원들은 정치권이 합의한 이상 특검을 피할 수 있는 가능성이 별로 없다고 체념하면서도 대통령 거부권 행사 여부, 최근 대규모 특별수사팀이 꾸려진 검찰 수사와의 관계 등 향후의 여러 변수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삼성은 특히 정치권이 특검의 수사 범위를 불법 경영권 승계 의혹, 불법 비자금 조성 및 로비 의혹 전반 등으로 정하자 수사 범위가 구체적이지 못하고 지나치게 포괄적이지 않느냐며 곤혹스러워했다. 이건희 회장의 외아들 이재용 삼성전자 전무의 경영권 승계를 위한 불법 상속 의혹은 이미 에버랜드 전환사채(CB) 발행과 관련해 1, 2심이 끝났고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고 있는 등 지난 몇년 동안 수사와 재판이 진행돼왔는데 다시 원점에서 수사를 받아야 하는 것이냐며 당혹스러워했다. 삼성 임직원들은 불법 비자금 조성 의혹도 특검 수사 대상이 1997년 이후부터 현재까지 약 10년 동안으로 정해진 데 대해 수사 범위가 무한정 확대되는 것이냐며 우려를 감추지 못했다. 특히 삼성은 특검 수사가 개시되기 이전에 우선 검찰 수사가 진행될 것으로 예상되는데다 전 법무팀장 김용철 변호사의 추가 폭로 가능성도 없지 않아 삼성에 대한 국민 불신이 증폭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 때문에 삼성은 검찰 수사가 진행되면 이에 성실히 임하는 한편 김 변호사나 시민단체들이 제기하는 의혹에 대해 사실관계를 조목조목 밝혀 최대한 의혹 해소를 위해 노력하겠다는 입장이다. 삼성 관계자들은 "김 변호사의 폭로로 사태가 여기까지 진행돼왔는데 김 변호사는 더 이상 의혹을 부풀리지 말고 불법과 비리의 증거가 있다면 이를 제시해주길 바란다"며 "그래야 진상 규명을 위해 우리도 대응할 수 있을 것 아니냐"고 털어놓았다. 삼성 내부에서는 특검, 잇따른 폭로 등으로 이번 사태의 장기화가 불가피해지자 경영차질을 우려하는 분위기가 점차 강해지고 있다. 삼성의 한 직원은 "특검이 최장 100여일 계속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내년초 약 3개월은 그룹 수뇌부들이 수사를 받는데 집중하느라 경영 공백이 발생하는 것 아니냐"며 "그룹 핵심 사업인 반도체의 국제 시황 부진으로 가뜩이나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실적 부진이 악화되고 경영위기가 가시화할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또다른 직원도 "올해 사업을 평가하고 내년 사업계획을 짜려면 그룹과 계열사의 경영 역량이 집중돼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 안타깝다"며 "정기 임원인사 등 여러 현안들이 뒤로 미뤄지는 등의 차질이 우려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