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기사는 BizⓝCEO 기획특별판 입니다 >

경기도 시흥 시화공단에 위치한 수출 중소 제조업체 A사.

출근하자마자 원ㆍ달러 환율을 체크하는 것이 직원들의 정규 일과가 됐다.

전과 똑같은 재료와 정성으로 제품을 만들어 똑같은 지역에 수출하고 있지만 영업이익은 계속 줄고 있다.

환율 변동에 따라 회사가 천당과 지옥을 오간다.

올해 들어 직원들 얼굴에서 웃음을 찾아보기 힘들다.

사무실 분위기는 추워진 날씨만큼이나 갈수록 얼어붙고 있다.

한 때 알찬 기업으로 잘 나가던 공작기계 제조업체 M사 역시 최근 환율 때문에 원가를 줄이는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

중국산 저가 제품들과의 치열한 경쟁 때문에 제품 단가를 높일 순 없기 때문에 제조원가를 줄이는 방법밖에 없다.

이 회사 K사장은 "수출하면 할수록 손해를 보는 구조여서 최대한 수출 물량을 줄이기 위해 애를 쓰고 있다"며 "그러나 미국 일본 등 현지 수출업체들과의 관계도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난감한 입장"이라고 답답함을 털어 놓았다.

원ㆍ달러 환율 하락의 파장이 현실화되면서 수출 기업들의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원화 강세로 인한 타격은 수출 위주의 사업 구조를 가진 모든 기업에 해당된다.

그러나 대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자금력과 위기관리 능력이 떨어지는 중소기업이 체감하는 위기감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다.

이들 중소기업은 지금까지의 정부 조치가 미흡하다며 환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때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최근 국제유가 등 원자재 값 폭등과 원화 강세 등으로 수출 중소기업의 약 3분의 1이 영업이익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수출보험공사의 '수출중소기업 손익 분기환율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올 상반기 650개 수출 중기 중 211개(32.5%)의 영업이익이 마이너스로 분류됐다.

이는 상반기 중 평균 환율(934.08원)이 수출 중기의 손익분기점 환율(평균 937.92원)보다 더 떨어졌기 때문이다.

특히 하반기 들어 평균 환율이 923.5원까지 내려간 점을 감안하면 수익성은 더 악화됐을 것으로 추정됐다.

원화 강세와 원자재 값 상승 탓에 수출 채산성이 바닥으로 떨어진 상황에서 '물류비 급등'이란 악재까지 더해져 '적자 수출'을 감내하는 업체가 부지기수다.

상당수 수출 중소기업들이 해외시장에서 '퇴출 위기'에 내몰린 것.

중소 수출업체 관계자는 "물동량이 많은 대기업은 협상을 통해 운임을 깎을 수 있지만 중소기업은 해운업체가 달라는 대로 줘야 하는 실정"이라며 "요즘 업계에선 '환율보다 물류비가 더 무섭다'는 말이 나돌고 있을 정도"라고 전했다.

원화 강세와 원자재 값 상승에 이은 물류비 급등으로 '수출 한국'의 신화가 꺾일까 우려되는 등 여파가 커지자 정부도 긴급 지원방안 마련에 나서는 등 분주한 모습이다.

산업자원부는 연말까지 한시적으로 수출 실적 100만달러 이하의 영세 중소기업이 수출보험공사의 환 변동 보험에 가입하면 추후 환차익이 발생하더라도 이를 환수하지 않기로 했다.

또 보험료 부담을 덜기 위해 보험 만기 시의 보험금에서 보험료를 공제하도록 하는 방안도 도입할 방침이다.

스스로 환위험 관리에 나서는 등 안정적인 수익을 확보하기 위한 자정노력을 기울이는 업체에 우선순위를 두고 지원하겠다는 의도다.

하지만 아직까지 환율 위험관리가 필요한 중소 수출업체 중 절반가량만 환 변동 보험을 이용하고 있는 게 현실.환위험 관리를 아직 '강 건너 불'로 치부하는 경영자들이 그만큼 많다는 얘기다.

이제는 중소기업 스스로가 정부의 보호울타리에만 기댈 게 아니라 자생력을 키워야 할 때다.

어린 아이가 젖을 떼고 스스로 걷고자 할 때 부모는 덜 넘어질 수 있도록 도와줄 뿐이다.

수출보험공사의 환 변동 보험과 은행을 통한 선물환 거래를 적절히 활용하는 한편,직원들에게도 환율 관련 교육을 실시하는 등 내부역량 강화에 적극 나서야 한다.

환율 경고음에도 부상을 입지 않는 몇몇 업체들은 환위험 노출액의 80% 이상을 선물환거래와 환 변동 보험에 가입해 환차손 발생을 헤지(회피)하는 등 환리스크를 정면 돌파하고 있다.

환위험 관리 우수기업은 환차손실 방지를 통해 수출 채산성을 제고할 뿐만 아니라 각종 인센티브를 제공받을 수 있다.

적극적인 리스크 관리로 '환율의 덫'을 탈출하는 지혜를 모색해야 할 때다.

양승현 기자 yangs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