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5년 '혜은이'라는 가수가 처음 등장했을 때 사람들은 의아해 했다.

'혜은이'라니.성이 '혜'고 이름이 '은이'인가,아니면 '이혜은'이라는 건가.

그러나 '당신은 모르실거야'가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면서 혜은이란 이름은 이상하기는커녕 예쁘고 기억하기 쉬운 예명의 효시가 됐다.

요즘 연예인의 예명을 들으면서 성과 이름을 구분하려는 사람은 없다.

'양파'면 양파,'자두'면 자두라고 받아들인다.

예명은 이렇게 시대의 흐름을 전달하거니와 보통사람의 이름 또한 세월과 무관하지 않다.

언제 태어났느냐에 따라 주로 쓰인 한자도 다르고 전체적인 경향도 다르다.

통계로 본 광복 이후 세대별 대표적인 남자 이름은 '영수(1945년) 정훈(1975년) 민준(2006년)이고,여자는 영자 미영 서연'이다.

45년생 남자 이름엔 장수를 비는 '길 영(永)'이 많았지만,70년대엔 '공 훈(勳)'과 '이룰 성(成)'이 증가했고 여자 이름엔 '미(美)'와 '은(銀)'이 부쩍 늘었다.

남녀의 성별 구분이 확실해졌던 셈이다.

80년대엔 순한글 이름이 인기였고,근래엔 한자를 쓰되 영어이름같은 쪽을 택하는 한편 딸에게 중성적 이름을 지어주려는 경향이 짙다고 한다.

부모 마음은 다 같은지,글로벌 현상인지 미국에서도 너무 여성적인 이름은 최고경영자에 맞지 않는다며 딸 이름을 중성화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이름이 인간관계에 영향을 미친다는 생각으로 작명사이트를 찾는 부모 또한 급증했다고 한다.

예일대에선 최근 이름이 K(삼진아웃의 상징)로 시작되는 야구선수가 삼진아웃될 확률이 다른 선수보다 높다는 연구결과도 내놨다.

이름과 사회적 성공 사이에 상관관계가 있다는 발표다.

연구팀은 그러나 이는 비밀스런 이유 탓이라기보다 이름에 대한 부정적 생각이 은연중 당사자의 의지를 약하게 만들기 때문인 것 같다고 덧붙였다.

딸에게 중성적 이름을 찾아주는 건 그렇게 해서라도 딸의 의지를 키우고 주위의 편견을 불식시키려는 의도일 것이다.

어느 정도 효과가 있을지는 기다려 볼 일이다.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