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 마무리할 일들로 바쁜데도 마음 한구석 애잔한 슬픔이 일렁인다.
치솟는 물가와 풀릴 줄 모르는 장기 불황 때문인지 대통령 후보들의 분홍빛 케이크처럼 탐스러운 공약도,요란한 광고도 가슴에 그리 와닿지 않는다.
오늘 아침엔 내년 일거리가 없어 걱정하는 친구,직장을 잃은 선배와의 통화로 마음이 무겁다.
"일을 잃으면 자신감까지 잃고 더 외로울텐데… 위기는 또다른 기회니까 힘내요!"라고 용기를 준 후 도울 일 없을까 한참 생각했다.
내 코도 석자지만,나 힘들 때 위로받은 고마움을 생각하면 쉽게 내쳐지지가 않는다.
게다가 나이를 먹다 보니 용기와 위로를 준 지인들은 혈육보다 친하다 못해,심지어 나의 일부가 된 것 같다.
결국 인생은 서로 돕고 문제를 함께 풀어가는 것인 듯하다.
힘든 것이 그리 힘들지 않게 풀리리라 기도하면서.
경제가 힘들면 외로움은 더 뼈아프다.
외로움….누구나 이걸 잘 이겨 열정을 바치면 뭐든 이루고,지면 병이 든다.
늙어서 가장 힘들다는 이 외로움을 못견디면 자신이 병들거나,주변 사람들이 괴롭다.
노인뿐 아니라 화나 스트레스,분노,우울증,불면증,현대인들의 수많은 질병과 성격장애적 증상들을 가만히 보면 그 원인이 외로움과 사랑의 결핍이다.
해결 방법은 비타민이 모자랄 때 영양제를 먹는 것처럼 간단하지 않다.
각오가 필요하다.
사랑을 받으려면 사랑을 줘야 한다는 각오 말이다.
거의 사랑을 주기보다 받으려 하기 때문에 고통스러운 것이다.
이 때 외로움으로 받는 고통은 자신이 변해 살 수 있다는 내 안의 '경계경보'다.
사랑을 먼저 주고,곁에 있어주며,함께 있는 시간을 많이 갖도록 바뀌어야 한다.
하지만 이것이 현대인들에게 결코 쉽지 않은 것은 먼저 유용성을 따지기 때문이다.
상대방이 앓는 괴로움이나 상처의 그 어둠 속으로 들어가 같이 아프고 위로하는 가운데 정은 그 어떤 밧줄보다 튼튼해진다.
그 훈훈함도 바로 사서 안은 군고구마 봉지보다 가슴 울린다.
황사나 산성비만큼 피하고 싶은 외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타인에게 뿌리내리지 않으면 죽음'이라는 톨스토이의 말을 가슴에 새기고 싶다.
며칠 전 '내 서른 살은 어디로 갔나'를 출간했다.
'상실의 시대'를 사는 청춘들에게 내 말들을 전하고 싶었다.
하지만 정작 이 책을 쓰고 나니 내가 더 큰 깨달음을 얻었다.
외로움을 이겨내는 고통을 다 알기 때문에,나약한 우리는 외로움에 질 준비를 먼저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나의 비겁함을 보고나니,고독은 더 깊은 사랑을 주고 더 깊은 인연을 맺기 위한 자기 성찰과 성장을 위한 탐구라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비로소 피하고 싶은 징글징글한 고독감도 나의 일부로 여기면 훨씬 살기 편하다는 것 또한 알게 됐다.
외로움을 창조적인 고독과 따뜻한 인정쌓기로 바꿔가는 노력 속에 시간은 가장 빛났다.
추운 날,난로보다 사람의 체온이 더 그리운 날.사람 사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음에도 조그만 관심에 의해 우리는 하나로 묶이고,따스함으로 인생이 지탱되는 존재임을 또한 실감한다.
12월의 사람들은 대체로 착해진 눈빛이다.
나도 예외는 아니어서 쪼개진 바위의 틈처럼 마음의 여유가 생겨 그 속에 남의 눈물,슬픔까지 그냥 빨아들이고 만다.
1년째 의식불명으로 "사랑해!"라고 외쳐도 못 듣는 어머니 때문일까.
나의 슬픔과 기쁨 속으로 기꺼이 들어와 곁에 있어준 지인들이 고마워서일까.
그래도 세상이 푸르고 말랑말랑한 공같이 아름다워서일까.
자주 눈물이 잉크처럼 번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