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한국어 말하기 대회 수상자들

日 야스나리씨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 보니 생활한국어 거침없이 늘더군요"

中 류우징씨 "서울여자 상냥한 말투 매력적 이제 사투리도 척척 알아들어"

"'말도 안 되는 소리'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이를 일본어나 영어로 번역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야말로 말도 안 되는 소리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웃음)"

지난달 23일 이화여대 주최로 외국인 '한국어 말하기 대회'가 열렸다.

대회에 참가한 일본인 나가이 야스나리씨(30)는 유창한 한국말로 좌중을 압도했다.

그가 던진 한마디 한마디에 청중들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1년 정도 한국어를 공부한 외국인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올해 17회째인 이번 대회에서는 50여명의 외국인들이 갈고 닦은 한국어 실력을 뽐냈다.

대상은 서울 고등과학원(KIAS)에서 수학 부문 연구원으로 근무 중인 나가이씨에게 돌아갔다.

나가이씨는 수상 소감을 묻자 "일본인은 한국말을 배우기가 훨씬 쉽다"고 겸손하게 대답했다.

그는 지난 4월 한국에 오기 전까지 한국말을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

도쿄대 수학과를 나온 나가이씨는 전형적인 이공계 연구원이었다.

언어 자체에 관심이 없었고,영어를 유창하게 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런 그가 1년 만에 한국어 말하기 대회에서 대상을 받은 데는 사연이 있었다.


"한국에 온 지 얼마 안돼 이사를 했어요. 전기,수도,가스 등 신경써야 할 부분이 너무 많았죠.하지만 영어나 일본어만으로는 되는 일이 하나도 없었어요."

그는 그때 한국어를 못하면 한국에선 살기 힘들다는 것을 느꼈다고 했다.

한국말을 배운 것도 한국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의 몸부림이었던 셈이다.

그렇지만 막상 한국어를 배우려니 막막했다.

수소문 끝에 찾은 곳이 이화여대 언어교육원이었다.

집에서 가깝고 일주일에 3회 들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어를 배울 수 있는 주변 환경이 좋진 않았다.

그의 직장에서는 모든 연구원들이 영어를 사용해 한국어를 접할 기회가 많지 않았다.

대신 나가이씨는 TV를 보면서 '생활 한국어'를 익혔다.

그가 주로 보는 TV 프로그램은 인기 시트콤인 '거침없이 하이킥'.그는 외국어를 배우려면 TV 시청만큼 좋은 게 없다고 조언했다.

다만 그냥 생각없이 봐선 곤란하다고 당부했다.

"주인공들이 하는 말을 의식적으로 들어야 합니다.끊임없이 무슨 말인지를 상상하고 그래도 잘 들리지 않으면 대본을 확인하며 끝까지 알아내야 합니다."

시트콤,드라마 등을 보면서 한국인들이 실생활에서 쓰는 자연스러운 표현을 익힐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중ㆍ고급부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한 류위징씨(21ㆍ중국)도 외국어 학습 노하우를 공개했다.

"영화는 어린신부,드라마는 러브스토리 인 하버드와 풀하우스를 좋아해요. 중국에 있을 때부터 즐겨 봤는데 한국에선 실컷 볼 수 있으니 더 좋았죠."

베이징 제2외국어대 한국어학과에 재학 중인 류씨는 올 3월 이화여대에 교환학생으로 왔다.

그는 "중국 여대생들 사이에서 한국 드라마의 인기는 대단하다"며 "한국어를 전공하는 친구들과 자주 봤다"고 말했다.

류씨는 특히 '착한 말투'에 관심이 많다고 했다.

지나치게 혀 짧은 소리를 내며 애교를 떠는 여성들의 말투는 인기가 없다고 전했다.

두 사람 모두 한국어가 영어보다 쉽다고 입을 모았다.

이들은 "한국어는 원리만 이해하면 쉽다"며 "한국어 자체만 배우려 하지 말고 한국문화 전반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한 독특한 한국문화는 전화 예절.류씨는 전화를 끊는 한국사람들의 습관이 독특하다고 지적했다.

"중국인은 전화를 끊는다는 표시로 '짜이젠'이나 '바이 바이'라는 표현을 한다"며 "한국 친구들이 말도 없이 전화를 끊어 황당했던 적이 있다"고 소개했다.

나가이씨도 친구들이 그냥 전화를 끊는 바람에 혼자 얘기를 한 적이 많다고 공감했다.

한국인들은 '립서비스'를 많이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중국 사람들은 '친하게 지내자'는 말을 잘하지 않고,정말 친하게 지내고 싶으면 직접 행동으로 보여주는 데 비해 한국 친구들은 '친해지고 싶다'는 말을 많이 하는 것 같다는 게 류씨의 지적이었다.

나가이씨도 한국말은 겉으로 드러난 말 외에 속뜻이 많은 것 같다고 거들었다.

친구들이 '친하게 지내자'는 말은 '그냥 만나서 반갑다' 정도의 의미로 받아들이면 된다고 풀이했다.

"일본인에 비해 한국 사람들은 감정 표현을 솔직하게 하는 것 같지만 말뿐일 때가 많죠."

하지만 한국에 와보니 일본에서 생각했던 것보다 반일 감정이 심하지 않아 안심이라고 했다.

한자문화권이지만 '알쏭달쏭' '달콤새콤' 등 한국어만의 고유 표현이 많은 것도 매력적이라고 밝혔다.

나가이씨는 1년 뒤 독일 연구소를 자리를 옮길 예정이지만 한국어가 너무 재미있어 공부를 계속 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류씨는 중국에서 한국어 통역가가 되는 것이 꿈이다.

대학교 3학년인 그는 졸업 후 다시 한국으로 와 이화여대 중국어 통번역대학원에 진학하고 싶다고 했다.

그는 "중국에서 한국어 통역을 하면 수입이 좋지만 돈 때문이 아니라 정말로 '한국어'가 좋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성선화 기자 d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