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도주를 일주일에 몇 번 마시는 정도입니다. 실적 스트레스와 활동 부족으로 간이 나빠졌다고 봐야죠."

한 시중은행 중역(54)은 남들보다 술을 적게 먹었는데도 최근 건강검진에서 지방간으로 판명된 원인을 이렇게 설명했다.

한국경제신문이 서울대병원 강남검진센터와 공동으로 최고경영자(CEO) 건강검진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은행 증권 보험 등 금융분야 CEO들은 전체 업종 가운데 가장 적은 음주량(평균보다 46% 적음)을 나타내고도 지방간(간에서 차지하는 지방의 비중이 5% 이상) 유병률 순위에서 3위를 차지했다.

금융계 종사자들은 "강권석 기업은행장이 편도종양으로 숨진 것도 업적에 대한 과도한 집착과 스트레스가 원인일 것"이라며 애석해 했다.

서울대병원 측은 "CEO들의 건강지표를 보면 음주 흡연 비만 등에서 업종별로 두드러진 특징을 보였다"며 "하지만 같은 업종에서도 개인별로 큰 편차를 보여 개인 건강관리가 중요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음주와 지방간

이번 조사에서 CEO들은 소주나 맥주 양주 포도주 등을 월평균 61.7잔 마시는 것으로 나타났다.

주종은 달라도 한 잔에 포함된 절대 알코올량은 10∼12g으로 비슷하기 때문에 하루 평균 22.7g을 마시는 셈이다.

이는 한국인 30세 이상 남성이 하루 평균 18g의 알코올(월평균 기준 50여잔)을 마시는 음주량보다 20%가량 많은 수치다.

서울대병원은 "CEO 음주량을 날짜로 환산하면 일주일에 4일 이상은 마시는 셈"이라고 말했다.

업종별 음주량을 보면 영업활동을 치열하게 하는 화학 제약 섬유업종의 CEO들이 가장 낮은 금융업종보다 세 배 가까이 마시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이로니컬하게도 제약 화학 섬유업종 중역들은 나름대로 건강관리를 해 전 업종을 통틀어 지방간 유병률이 가장 낮았다.

음주량에서 정신적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언론 출판 광고 회계 컨설팅 등 지식산업의 CEO들이 2위를 차지했다.

잔수로 따져도 1위 업종과 3.4잔밖에 차이가 나지 않을 정도로 다른 업종보다 과음을 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반면 술을 가장 적게 마시는 그룹은 금융분야 CEO로 전체 평균보다 46%나 적은 음주량을 나타냈다.

정유·가스 등 에너지업종은 두 번째로 술을 적게 마시는 그룹임에도 불구하고 지방간,간기능 이상이 최다였다.

비만과 고열량 식단으로 인해 나타나는 현상으로 추정된다.

◆흡연

가장 담배를 많이 피우는 골초군은 고위 공무원들로 하루에 32.5개비를 피웠다.

수직관계와 의전이 엄격한 관료사회의 스트레스가 흡연을 부추기는 것으로 보인다.

다음으로 화장품·의류·제지·가구업종(27.1개비)이었으며 식품(14.6개비)과 전기·전자 등 IT업종(14.8개비)은 흡연량이 적은 축에 속했다.


◆비만

체질량지수(BMI:체중을 키의 제곱으로 나눈 수,㎏/㎡)가 25를 넘으면 의학적인 비만으로 분류한다.

전체 CEO 중 이에 해당되는 비율(비만유병률)은 46.0%로 일반의 35.2%보다 높았다.

가장 비만한 업종은 정유 가스분야로 열량 과잉섭취에 비해 운동이 적은 것으로 분석됐다.

두 번째로 비만한 업종은 화장품 의류 제지 가구와 같은 소비재 산업군이었다.

반면 골프장과 같은 레저업종과 게임 엔터테인먼트 업종은 비만유병률이 31.8%에 불과했다.

레저분야는 업종의 성격상 '웰빙'을 지향하기 때문에,게임 엔터테인먼트는 CEO의 평균 나이가 48.2세로 CEO 평균 53.7세보다 젊어서 날씬한 몸매를 유지하는 것으로 보인다.

◆콜레스테롤

총콜레스테롤이 정상치보다 높은 CEO 등은 전체의 14.3%로 일반의 7.5%보다 두 배 가까이 됐다.

혈관 동맥경화를 유발하는 고지혈증의 위험요인이 그만큼 높다는 얘기다.

이처럼 콜레스테롤이 높고 중성지방이 낮게 나온 것은 잦은 회식에서 육류나 기름진 음식을 많이 먹어도 밥 빵 등 탄수화물을 적게 먹는 이른바 '황제 다이어트'를 하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당뇨병 고혈압

당뇨병(공복혈당이 126㎎/㎗ 이상)이 가장 많은 그룹은 고위 공무원과 경제단체 임원으로 당뇨병에 걸린 사람이 4명 중 1명꼴(23.5%)에 달했다.

혈압을 보면 전체의 35.2%가 고혈압(수축기혈압 140㎜Hg 이상 또는 이완기혈압 90㎜Hg 이상)으로 일반 국민의 30.2%보다 다소 높았다.

정종호 기자 rumb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