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광우(全光宇) < 딜로이트코리아 회장 >

외환위기 10주년을 맞으면서 새삼 10년이 갖는 의미를 되새겨보게 된다.

10년이면 중국처럼 천지개벽을 이루기도 하고 일본처럼 '잃어버린 10년'을 보내기도 한다.

지난 10년 간의 변화에 대한 최근 국내 여론조사에 따르면 선진국 진입을 위한 초석(礎石)을 다졌다는 의견과 잃어버린 10년이었다는 의견이 첨예하게 나뉘고 있다는 점에서도 지금은 국민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새로운 비전과 선진화 전략을 필요로 하는 때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지난 10년 동안 가장 뛰어난 도약을 이룬 나라는 아일랜드다.

10년 전 처음으로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를 연 후 금년에 무려 5만달러 시대에 진입하는 기록을 세우고 있다.

18%에 달하는 높은 실업률과 국민총생산(GDP)의 120%를 넘는 막대한 국가채무로 시달리면서 국제통화기금(IMF) 구제신청 직전상황으로 경제가 악화된 것은 정확히 20년 전이었다.

국가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노력은 규제혁파와 세제개혁을 포함한 적극적인 개방정책을 중심으로 이뤄졌다.

그 중 가장 특이한 내용은 국제금융서비스센터(IFSC)의 설립으로 금융산업의 국제화를 성장의 새로운 축으로 활용한 점이다.

때마침 런던이 획기적인 금융규제 완화책인 빅뱅(Big Bang)을 통해 세계 금융업의 새로운 메카로 부상하기 시작한 직후이기도 했다.

아일랜드는 유럽연합(EU) 국가 중 영국 외에 유일하게 영어를 공용어로 쓰는 것 외에도 우리나라와 지리적,문화적 차이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수출의존형 소규모 개방경제라는 두 나라의 공통점 등을 감안하면,금융산업 선진화와 해외투자 활성화를 국제경쟁력 강화의 핵심전략으로 삼아 성공한 아일랜드의 경험이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은 적지 않다.

우선,정부의 정책적 리더십과 신뢰성,그리고 일관성이 관건이다.

새로운 비전과 전략에 대한 정치적 논란이 적지 않았지만,일단 정책방향이 정해진 후에는 국민과 의회를 설득하고 일관성 있게 실천에 옮긴 강력한 정책실행 리더십이 주효했다.

투자촉진과 외자유치를 위한 규제철폐는 물론 법인세 인하를 통한 인센티브와 안정된 노사관계도 촉매 역할을 하게 된다.

시장친화적이며 유연한 감독체계도 금융허브 구축에 큰 몫을 감당해 오고 있다.

아울러 정부의 각 정책이 단편적으로 추진되는 것이 아니라 국가적 목표에 부합하도록 '하나의 패키지'로 운용돼 왔다는 점을 기억할 만하다.

둘째,자유주의 시장경제 하에서 정부와 민간의 유기적 협력은 성장엔진의 윤활유다.

아일랜드 정부 최고 조직인 총리실이 주관하는 'Clearing House Group'이라는 민관협의체를 통해 시장의 필요에 전향적으로 대응하는 생산적 협조체제를 가동해 왔다.

"시장의 변화속도가 너무 빨라 민간부문의 의견을 경청,수렴하지 않고서는 실효성 있는 정책을 추진할 수 없다"는 아일랜드 정부의 인식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셋째,인력강화를 위한 교육정책이 지식기반 산업 경쟁력의 원천이다.

국제적인 금융회사나 첨단기업을 유치하기 위해 경쟁력을 갖춘 인력을 육성하고 확보하는 데에 우선순위를 두고 있다.

특히 금융과 재무,수학과 과학 분야의 인적자원 개발에 주력해 온 결과 세계 굴지의 금융회사는 물론 정보통신과 생명공학 관련 1000여개 다국적기업을 끌어 들이게 된다.

대표적 기업들이 모이면서 발생하는 '클러스터 효과'도 인재와 자본의 유치에 일조하고 있다.

세계화 시대에 영어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영어공용화는 인력의 글로벌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추진해야 할 필수과제다.

타국의 경험을 직접 적용하는 데에는 물론 한계가 있다.

그러나 성공을 담보하는 핵심가치에는 충분한 공통점이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아일랜드의 성공이 먼 나라의 일만이 아닌, 우리의 성공신화로 이어지기를 내년 초 새 정부의 출범을 앞두고 기대해 본다.

/국제금융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