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당이 신내림의 운명을 거역할 수 없듯 붓을 놓을 수 없더라구요”

‘석채수묵화가’ 박대조씨는 ‘화가를 하면 배를 곯는다’는 주변의 말에 하는수없이 그림을 접고 경상대학교 식품공학과를 졸업, 대기업 사원을 거쳐 석재 관련 회사도 차렸지만 도저히 그림을 그만둘 수 없었다고 했다.

몇 년 전부터 회사 일선에서 물러나 산으로 들로 뛰어다니며 그림에만 전념하고 있다.

하고많은 장르 중에서 왜 수묵화냐는 질문에 그는 “그냥 먹의 느낌이 너무 좋아서”라고 대답했다.

특이한 점은 자연을 재현해 내는데 화선지와 모필만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 돌을 조각조각 잘라 고유의 무늬를 맞춰 풍경을 그린다. 수 미터에 이르는 작품을 완성하기까지 대리석을 자르고 고르는 일이 여간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돌을 만지는 것이 마냥 신난다는 눈치다.


곶(串)을 움직이다 1,500x5,860cm

현재 강원도 원주 시청에 걸려있는 작품 ‘곶(串)을 움직이다 ’는 운무(雲霧) 속에 싸인 치악산을 돌조각을 이어 표현했다.

대리석이 가진 물결친 농담이 안개에 휩싸인 채 언뜻언뜻 보이는 산자락을 부드럽게 펼쳐낸다. 수묵 모필화와는 색다른 맛이 난다.

“풍경화를 그린다고 해서 그대로 모방하지는 않습니다. 치악산의 산세를 단순히 베끼는 것이 아니라 눈에 비치고 해석되는 모양을 그려내는 것이죠”


청양사 26.5x31cm

그는 원하는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는 도구에 한정을 두지 않는다. <청양사>는 대리석을 파내 물감을 입힌 그림을 뒤에서 빛을 투영시켰다.

청양사를 바라보며 느꼈던 이미지를 제대로 표현해내기 위해 남들이 하지 않는 시도를 마다하지 않았다는 것. 그는 “풍경을 그린다는 것은 ‘공간과 소통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생활이나 여행에서 받은 자극을 표현하되 스타일을 한가지로 고집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고 강조했다.

길지 않는 작품 생활동안 만들어낸 그의 포트폴리오는 기본적인 수묵 산수화를 비롯해 수묵 추상화, 석채 산수화, 석채 추상화 등 비교적 다양한 작품으로 이뤄져 있다.



생존과 사멸

그는 작년과 올해에 걸쳐 개인전을 두번 열었고, <무산 서예술대전>, <시가 다시, 희망이다> 등 단체전에도 참가했다.

물감이 주는 색감보다 대리석의 색감이 좋다고 말하지만, 한편으로는 '새로운 시도'에 대한 욕심은 계속되고 있는 듯하다. 그는 "아직 머릿속에서 구상하는 단계에 불과하지만 사진과 회화를 접목시킨 작품도 해볼까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술평론가 박영택 경기대 예술대학교수는 “모필이 아닌 생활 주변에서 발견할 수 있는 오브제(대리석)를 활용해 산수를 표현해 내는 것은 차별화된 시도”라며 “상당히 흥미를 끄는 작업”이라고 평가했다.


곶(串)을 움직이다Ⅱ 240x800cm

한경닷컴 문정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