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 경영하는 사람을 애국자라고들 하는데,저도 20여년 애국했으니 이번엔 제 어릴적 꿈을 펼쳐보고 싶었습니다."

중소기업 대표가 지천명(知天命)이 넘은 나이에 가수로 데뷔해 성인가요 차트 정상에 올랐다.

류기진 비케이테크 대표(52)가 그 주인공.류 대표의 데뷔곡 '그 사람 찾으러 간다'는 차트코리아가 11월 넷 째주에 발표한 방송종합 차트 내 성인가요차트에서 100여회의 방송 횟수를 기록하며 1위를 차지했다.

류 대표가 거둔 1위는 성인가요계의 쟁쟁한 톱 가수 장윤정 현숙 박현빈 등을 제치고 거둔 성과여서 더 큰 의미를 갖는다.

차트코리아는 매주 TVㆍ라디오를 포함한 전국 1700여개의 방송 프로그램을 모니터링해 순위를 발표하는 방송모니터링ㆍ순위 전문업체다.

류 대표는 가스레인지나 가스보일러,자동차에 쓰이는 프레스 부품을 생산하는 비케이테크(인천 석남동)를 경영하고 있다.

이 회사는 린나이코리아,대우차 등에 제품을 공급하는 중견 제조업체로,50여명의 직원이 연매출 80억원 정도를 올리고 있다.

류 대표는 어릴 때부터 동네 제일의 가수로 통했다.

서라벌고 재학 때도 교내 명가수로 이름을 날렸다.

그룹 '벗님들'의 리더 이치현,'그냥 걸었어''장난감 병정'의 작곡가 김준기 등이 당시 가수의 꿈을 함께 꾸던 같은 반 친구다.

그러나 류 대표는 아들을 끔찍히 아끼시던 아버지의 뜻을 꺾지 못해 가수의 꿈을 접어야 했다.

1986년 사업을 시작한 이후 술자리에서 노래를 부르면 "직업을 바꾸라"는 농담도 많이 들었다.

가수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그는 4년 전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노래를 해보겠다고 마음먹었다.

"공장 증축도 마무리되는 등 회사가 완전히 자리를 잡아서 제가 노래활동을 하는데 무리가 없겠더라고요.

그래서 먼저 거래처 분들께 노래를 해도 괜찮겠느냐고 자문을 구했더니 다들 환영하시더군요.

물론 직원들도 든든한 후원자가 돼 주었고요."

2005년 가을 1집 음반을 내면서 데뷔한 류 대표는 가수로서의 가능성을 1년여 만에 보여줬다.

작년 말 한 라디오방송사 주최로 처음 열린 '2006 대한민국 트로트 가요대상'에서 신인상을 거머쥔 것.

류 대표의 노래 '그 사람 찾으러 간다'는 경쾌한 폴카 리듬의 세미 트로트곡이다.

희망적이면서도 여운이 남는 노랫말이 중년들의 가슴에 와 닿는다.

그는 "요즘 좌절하고 포기하는 중년들이 많은데,이들이 다시 일어나길 바라는 마음으로 노래를 불렀다"며 "노래 속의 그 사람은 '잊고 살아온 나 자신'"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2집 음반을 준비 중인 류 대표.그는 그러나 노래보다 사업이 우선이라고 말한다.

사업 스케줄이 생기면 방송 출연요청도 거절한다.

이 때문에 방송 관계자들이 "섭외하기 가장 힘든 가수"라고 농담을 건넨다며 유쾌하게 웃었다.

최규술 기자 kyusu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