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기 (洪 俊 基) 웅진코웨이 사장 jkhong@coway.co.kr

달력이 한 장밖에 남지 않았다.

재작년 이맘 때 우리 가족은 유럽으로 여행을 떠났다.회사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십수년 동안 가족과 시간을 따로 보내지 못했기에 모처럼 큰 맘을 먹은 결과였다.당시는 회사에서 해외 출장을 많이 다닐 때라 가족 여행은커녕 같이 식사한 기억도 손에 꼽을 정도였다.

우리 부부와 아들,세 식구는 모처럼만의 여행에서 많은 대화를 나누고 배우는 기회를 갖기로 다짐했다.단체관광보다는 우리 가족이 직접 일정을 짜고 숙소를 정하기로 했다.

그 대신 가는 곳에서는 현지 가이드를 통해 그곳의 역사와 문화를 배우기로 했다.

그야말로 가족 수학여행을 떠나게 된 것이다.

가족끼리 고민하면서 여행지를 정하고 유럽을 돌았다.오스트리아의 잘츠부르크는 아내가 꼭 가고 싶어한 곳이었다.모차르트의 고향으로 유명한 잘츠부르크는 '소금의 성'이란 뜻이라고 했다.소금이 중요한 자원이던 시절,잘츠부르크는 소금을 기반으로 흥성했던 곳이다.잘츠부르크에서 우리 가족은 현지 가이드로부터 이런 얘기를 들으며 흥미진진하게 도시를 유람했다.

오전 내내 잘츠부르크의 역사와 숨겨진 얘기들을 배부르게 듣고 나니 이제 잘츠부르크의 음식으로 배를 채울 시간이 됐다.우리 가족은 무엇을 먹을까 얘기를 하며 주위를 기웃거렸다.그때 오전에 함께 가이드를 따라 다니던 젊은 동양인 커플이 다가왔다.20대 중반의 한국 대학생들이었다.

그중 남자가 정중하게 자신들에게 밥 한 끼를 사줄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우리 가족은 이역만리 타국에서 손님을 맞기 위해 서둘러 식당에 들어갔다.

그 젊은이들은 배낭여행 중이며,먹고 자는 것은 최대한 아끼는 대신 그 나라의 문화와 역사를 배우는 데는 돈을 아끼지 않으려고 한단다.잘츠부르크의 가이드 비용이 생각보다 비싸서 밥을 굶어야 할 형편이었는데,우리나라 말이 들려서 염치 불구하고 한 끼를 신세진다고 했다.

그들을 보면서 젊음이 바로 이런 것이란 생각을 했다.배우기 위해 먹고 자는 것을 아끼는 그들은 부끄러운 것이 없었다.패기 넘치는 우리 젊은이들을 보면서 우리나라의 앞날이 밝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아들에게 좋은 교육이 된 것 같아 좋았다.

'소금의 성' 잘츠부르크 여행 중 배운 것은 우리 젊은이들과 그들이 만들어 갈 우리나라의 희망이었다.소금처럼 알뜰하게 세계를 유람하던 그 젊은이들이 지금은 어디에서 자기의 성을 만들고 있을까? 다시 한번 만나 밥 한 끼 대접할 수 있길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