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파동 때마다 기업 '휘청'…대학 주도 식품안전硏 필요


한국인의 식탁은 얼마나 안전할까.

최근 몇년새 만두파동,김치파동 식품 관련 각종 '파동'들이 우리의 '식탁안전'을 위협했다.

언론 보도 내용과 식약청 발표 하나하나 촉각을 곤두세우며 예민하게 반응했는게 현실이다.

문제는 먹거리 안전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높아지는데 이를 가늠할 중립적이고 공신력있는 기준이 없다는 것이다.

지난 김치 파동 때도 식품 안전 기준을 두고 식품안전의약청(식약청)과 업계들 간의 한차례 공방이 있었다.

고려대 식품 안전 연구센터는 이 같은 문제 의식 속에 탄생했다.

식품 대기업인 CJ 김진수 사장은 "만두파동 때 기준 없이 휘둘리는 현실을 접하면서 중립적인 식품 안전 연구기관의 필요성을 절감했다"며 연구센터의 취지를 설명했다.

마침 고려대 생명과학대학은 김병철 학장을 중심으로 식품안전 분야에 관한 국내 최고라는 명성을 쌓아왔다.

이에 CJ와 고려대는 국내 대학 최초로 민간 식품 안전 센터를 설립키로 뜻을 모았다.

미국에서도 일리노이 공대 등 3대 메이저 연구소 이외에는 작은 센터들이 많다.

기업과 대학이 합심해 대규모 연구센터(110억 지원,교수 100여명)를 짓는 일은 해외에서도 흔치 않은 일이다.

식품 안전 연구를 원하는 모든 이에게 개방된 고려대 식품안전 연구센터는 오는 12월 준공을 앞두고 있다.

이번 센터 건립을 통해 산학협동의 모범적인 모델을 제시한 김진수 CJ 사장,김병철 고려대 생명과학대학장과 미국 워싱턴주립대 식품안전 분야 강동현 교수가 만나 국내 식품 안전의 현실과 고려대 식품 안전 센터의 의의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김병철 학장(고려대 생명과학대)=식품 안전은 매일 숨쉬는 공기의 안전처럼 중요하다.

미국에서 매년 6000명이 식중독으로 사망하고,25만명이 유해한 음식 때문에 입원을 한다.

하지만 우리 사회적으로 식품 안전에 대한 인식은 여전히 부족하다.

대학에서조차 설립한 중립적인 식품안전 연구센터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던 것 같다.

◆김진수 CJ 사장=전국에 식품 기업은 8만여 개다.

하지만 CJ처럼 자체 식품 안전 센터를 보유한 기업은 5~6개 대기업에 불과한 실정이다.

대기업들은 자체적으로 연구를 진행하지만 그밖에 수많은 중소 식품 기업들은 비싼 돈을 주고 식품 안전 검사를 해야 한다.

식품 안전 문제가 터질 때마다 억울한 기업들이 많았다.

뭔가 객관적인 연구센터에서 검사를 받아보고 싶은데 국내 환경은 그렇지 못했다.

고려대 식품안전 연구센터는 저렴한 가격으로 수준 높은 연구 환경을 제공한다는데 의의가 있다.

◆강동현 교수(미 워싱턴주립대 식품공학과 교수)=미국에서는 아무리 작은 식품 기업이라도 저렴한 가격으로 식품 안전 테스트를 할 수 있다.

각 대학별로 식품안전 연구센터가 많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기업들이 식품안전 연구를 위해 접촉할 수 있는 채널이 마련돼 있다.

어디에 연락하면 어떤 연구를 할 수 있는지가 분명하다.

하지만 한국은 정부 기관인 식약청과 일부 대기업 이외에는 식품안전 연구를 할 수 있는 곳이 전무해 많은 기업들이 주먹 구구식으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김 학장=그런 중소 기업들에게 고려대 식품안전 연구센터를 무료로 개방할 수는 없겠지만 최소한의 비용으로 질 높은 연구를 진행할 수 있도록 할 것이다.

또 처음부터는 아니겠지마는 장기적으로는 정부 기관인 식약청에 맞먹는 권위를 지닌 민간 연구센터로 만들 계획이다.

먹거리 안전에 관한 한 제3의 중립적인 입장이 필요하다.

◆강 교수=미국은 국가기관이 식품 안전 검사 데이터를 관리하지 않는다.

국가가 공인된 민간 업체를 지정한다.

민간 기업이 공신력을 가진다.

고려대 식품안전 연구센터는 공신력을 가진 민간 센터로 국민적으로 관심이 뜨거울 때 중립적인 목소리를 내야 한다.

◆김 사장=식약청은 정부 기관이기 때문에 지니는 어쩔 수 없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현재 식약청의 식품 안전 기준은 지나치게 높게 설정되어 있다.

전세계 식품 안전 기준을 죄다 조사해 가장 엄격한 기준만을 적용하기 때문이다.

식품 안전 기준이 무조건 높다고 해서 좋은 것은 아니다.

◆김 학장=현재 국내 식품 안전 기준은 미국 FDA의 기준을 그래도 가져왔다.

하지만 미국 사람의 기준을 한국 사람에게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문제라고 본다.

우리에게 맞는 기준을 아직까지 확립하지 못했다.

한국인의 특성에 맞게 식품 안전 기준을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

◆강 박사=현재 한국에는 세균 관리의 기준이 너무 엄격하다.

균이 아예 없는 상태만을 안전한 것으로 본다.

하지만 미국에서 사용되는 상업적 멸균이란 의미는 사람이 먹어서 문제가 되지 않는 상태다.

모든 식품을 살균하게 되면 좋은 가공 식품이 나오지 못한다.

한국 음식 중에는 반가공 식품이 많은데 살균에 대한 극단적인 기준 때문에 한국 식품 개발이 더딘 상태다.

◆김 사장=전적으로 동의한다.

한국 음식의 특징은 발효 식품이다.

기본적으로 균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균이 없으면 나쁜 균도 없는 것이지만 반대로 좋은 균도 없어야 한다.

이같은 엄격한 기준이 한국 음식 문화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

◆김 학장=자칫 잘못 해석하면,고려대 연구센터가 식약청의 엄격한 기준보다 낮은 식품 안전 기준을 개발하는 곳으로 비춰질 수도 있다.

하지만 본질은 적정한 수준의 식품 안전 기준을 찾는 것이다.

◆김 사장=물론이다.

CJ 자체 연구 센터의 기준은 식약청의 기준보다 30%는 더 엄격하다.

핵심은 우리에게 맞는 새로운 기준을 찾아보자는 것이다.

◆강 박사=게다가 앞으로 식품 안전은 미래 화두가 될 것이 분명하다.

전세계에서는 날마다 신종 바이러스가 생겨나고 있다.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선진국일수록 식중독에 약하다.

◆김 학장=하지만 현재 국내 학문의 흐름은 지나치게 최첨단으로만 치우치는 경향이 있다.

현장과 관련된 실질적인 연구가 부족하다.

요즘 생명과학(BT)를 보면 안전보다는 기능 쪽을 치우친다는 느낌이다.

이는 마치 된장찌개를 끓일 줄도 모르면서 기능성 된장찌개를 만들겠다는 격이다.

하지만 고려대는 생명공학과로 합쳐져 사라졌던 식품공학과를 2000년 다시 살려냈다.

당시 이민석 교수와 같은 식품안전 분야 전문가들을 대거 영입했다.

식품 안전에 대한 확실한 비전이 있었기 때문에 유행에 휩쓸리지 않았다.

◆김 사장=식품기업 입장에선 고려대처럼 정도를 걷는 학교가 여간 고마운 게 아니다.

기업과 대학의 서로 협동하기 위해서는 어느 한편이 일방적으로 퍼주는 관계여서는 곤란하다.

서로간에 주고 받는 뭔가가 있어야 한다.

이것이 바람직한 산학 협동의 모델이라고 생각한다.

◆강 교수=미국의 경우 산학 협동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는데 서로 간의 수요를 충족시켜주기 때문에 관계가 유지 되고 있다고 본다.

◆김 학장=나는 두번 학장을 연임하면서 펀딩 능력이 있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흔히 그 비결을 묻는데 이는 매우 간단한 것이다.

기업이 간지러운 곳을 긁어주는게 바로 산학협동이다.

기업은 결국 이윤을 추구하는 곳이다.

산학협동을 통해 대학이 기업에 줄 수 잇는 혜택이 뭔지 분명히 하면 산학협동은 자연스럽게 이뤄질 수 있다.

◆김 사장=전적으로 공감한다.

우리에게 주는 것도 없이 와서 돈만 달라고 하면 우리에겐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를 통해 우리도 뭔가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끝으로 이번 산학협동을 계기로 한국이 식품 선진국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한국은 먹는 문화가 굉장히 발달한 나라로 냉동,냉장이 없었을 때 부터 식품 문화가 발전해 왔다.

발효 식품이 많은 식문화에서 식품 안전이 뒷받침이 안 되면 외국식 문화가 다 점령을 당하게 될 것이다.

◆강 교수=과거에는 없었던 균들이 계속 생겨나고 있다.

최근에는 대량 생산으로 보다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입을 수 있다.

이 시점에서 고려대 연구센터는 고무적이다.

◆김 학장=식품 안전 센터 준공은 대학 입장에선 모범적인 산학협동의 모델이다.

특히 일단 협동이 성사되면 그 이후에도 서로간에 밀접한 관계가 있어야 한다.

정리=성선화 기자 d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