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비게이션과 로봇 팔을 이용해 환자의 병변을 찾아 수술하는 기법이 등장하는 등 서양 의학의 발전이 눈부신데도 아직도 한방 치료를 선호하는 사람이 많다.
특히 화병(火病),아토피 피부염,저신장증,성불감증,비만,만성 두통,간질환,발기부전 같은 내과와 정신과적 성격이 복합된 질환인 경우에는 한방 치료가 유용하다는 인식이 강하다.
이처럼 과학 시대가 전개되고 있는데도 초과학이라 일컫는 한의학을 찾는 사람이 많은 첫째 이유는 가시적이고 물질적인 것을 기반으로 하는 서양 의학의 효과에 한계를 느낀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인체의 기능 현상을 연구하는 한의학을 대안으로 찾기 때문이다.
둘째는 마취 수술로 인한 부작용,특정 약물의 내성 축적 부작용에 의한 피해를 두려워하고 거부하기 때문이다.
셋째는 스트레스와 환경호르몬 식품첨가물 농약 등 각종 인공 유해물질에 대한 방어 수단으로 자연친화적인 한의학을 찾는 것이다.
서양 의학은 해부학적 생리학ㆍ생화학적 개념에 따라 인체를 연구한다.
이에 비해 한의학은 인체를 전일체로 보고 그 원동력을 정기신혈로 규정한다.
정(精)은 신장의 정액,뇌와 척추를 흐르는 척수액,뼈 속의 수액 등 인체를 이루는 가장 기본이 되는 미세한 물질로 부족해지면 빨리 늙고 머리가 어지럽고 다리가 무겁고 뼈가 약해진다.
기(氣)는 생명 활동을 영위하는 무형의 근원적 에너지다.
정이 물질적 개념이라면 기는 무형적이며 인체 변화를 일으키는 보이지 않는 힘이다.
부모로부터 받은 선천의 기,자연과 음식물에서 얻어지는 후천의 기로 나뉜다.
신(神)은 기에서 비롯된 생명의 정화로서 '정신'을 의미한다.
혈(血)은 기의 작용에 의해 생체를 순행하면서 영양분을 공급하는 유형의 물질로 주로 음식물에서 얻어진다.
혈은 서양 의학의 '피'에 한의학의 '정' 개념이 혼합돼 있다.
정신기혈은 따로따로가 아니다.
정으로부터 기가,정과 기로부터 신이,정ㆍ기ㆍ신으로부터 혈이 생기는 관계가 있다.
정기신혈과 진액(소화산물)이 저장되는 곳이 오장육부다.
간 심 비 폐 신의 오장(五臟)과 담 소장 위장 대장 방광 삼초의 육부(六腑)를 말한다.
인체 외부에 존재하면서 오장육부와 소통하고 기와 혈이 지나는 곳을 경락(經絡)이라 한다.
주된 줄기인 경맥과 곁가지인 낙맥을 통틀어 하는 말이다.
12가지 경맥과 임맥 독맥(인체 정중앙의 앞뒤로 놓임) 등에서 기가 잠시 머물렀다 흐르는 부위를 경혈(經穴) 혹은 혈자리라고 부르는데 내기(內氣)와 외기(外氣)가 서로 통하는 문 역할을 한다.
경혈은 쉽게 막히고 이로 인해 통증이나 질병이 초래될 수 있는데 한의사들이 침 뜸 부항 등을 놓는 자리가 바로 경혈이다.
중국의 '황제내경'은 우리 몸에 365개의 경혈이 있다고 기록했으나 최근 일본에서 연구된 바에 따르면 600여개의 경혈이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방에서는 경락이 막혀 기혈의 흐름에 장애가 생기고 연관된 장부의 항상성이 깨지면 병이 생긴다고 본다.
즉 경락과 관련된 장부의 기혈이 지속적으로 부족하거나 과다한 상태로 나타나면 이를 허실 또는 한열로 표현하면서 치료 대상으로 삼는다.
한의학은 또 장부의 작동 원리인 물질의 속성을 목 화 토 금 수 등 5가지 기운(五行)으로 구분하고 서로 돕는 상생과 서로 대립하는 상극으로 나눠 질병의 발생을 이해한다.
또 칠정(七情)을 인간의 기본 감정으로 규정하고 정신 상태에 따른 질환의 발생을 설명한다.
어혈,담음,화의 상승,풍열의 과다함,진액의 고갈 등을 병리 현상으로 이해해 이를 교정하는 것을 치료 목표로 삼는다.
따라서 한의학은 일관된 객관성을 확보하기 어려운 학문적 특성을 내재하고 있음에도 서양 의학이 물질적ㆍ해부학적 개념으로 설명할 수 없는 질환의 원인을 파악하고 진단 치료하는 데 여전히 유용한 이점을 안고 있다.
정종호 기자 rumb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