곳간이 비어 유동성 관리에 어려움을 겪었던 은행들의 자금 사정이 조금 나아지는 모습이다.

은행들이 예금금리를 대폭 올린 데다 주식시장의 변동성이 커져 은행으로 되돌아오는 자금이 조금씩 늘고 있는 덕택이다.

여기에다 엄격한 심사를 통해 중소기업 대출을 줄인 효과도 보고 있다.

하지만 채권시장의 불안감이 커진 상황에서 만기가 돌아오는 대규모 은행채를 상환해야 하는 만큼 은행의 자금 사정은 언제든지 악화할 수 있다.

게다가 증시 상황에 따라 예금 이탈 현상이 다시 빚어질 수 있다.

◆일부 시중자금 은행으로 U턴

신영증권은 지난달 8일 이후 은행권의 실세 총 예금을 조사한 결과 모두 10조7000억원 늘었으며 같은 기간 주식형 펀드는 7조6000억원 증가한 것으로 조사됐다고 5일 밝혔다.

은행권 자금 유입액이 주식형 펀드보다 3조원 이상 많은 것이다.

월간 기준으로 은행 예금 증가액이 주식형 펀드 증가액을 웃돌기는 지난 4월 이후 처음이다.

이승우 신영증권 연구원은 "지난달 중순부터 고금리와 은행권의 특판 경쟁이 맞물려 은행권으로 자금이 몰리는 현상이 포착됐다"고 설명했다.

일부 은행에서는 11월 한 달간 예금 증가액이 대출 증가액을 웃돌기도 했다.

국민은행의 경우 지난달 정기예금 증가액이 56조9484억원에서 60조3767억원으로 3조4683억원 증가했다.

이 기간 원화대출금은 149조9224억원에서 153조2375억원으로 3조3151억원 늘어 예금이 1500억원가량 많았다.

1년 정기예금 금리를 지난달 후반 연 5.7%에서 6.2%로 올리고 중소기업 대출을 일시 중단한 덕택이다.

◆유동성 위기 해소 진단은 일러

은행들은 7일 마감인 지급준비금 상황에도 여유가 있는 편이다.

11월 하반월(16~30일) 지준의 경우 4일 기준으로 5조원 정도 플러스다.

거액 자금이 갑자기 빠져 나갈 변수가 없다면 은행들은 한국은행으로부터 RP(환매조건부채권)를 매입하는 방식으로 잉여 자금을 운영할 것이라고 자금시장 관계자들은 전했다.

그러나 은행들의 '돈가뭄' 현상이 완전히 해소됐다고 보는 전문가들은 아무도 없다.

이승우 연구원은 "시중금리가 6%대에 고착화하지 않는 이상 주식형 펀드에서 이탈한 자금이 은행권으로 빠르게 회귀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내년 상반기 은행채의 만기가 집중 도래하는 것도 은행으로서는 부담이다.

내년 상반기 만기 은행채는 49조4746억원으로 올 상반기 34조4192억원에 비해 44%나 많은 규모다.

전문가들은 이 때문에 은행들이 안정적 수신에 비해 지나치게 많이 가져가고 있는 대출을 줄이지 않는다면 유동성 위기가 언제든지 재연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박준동 기자 jdpower@hankyung.com